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상흔

心田農夫 2009. 12. 31. 12:09

흔적

 

 

가라 한적 없건마는

가겠다는 소리 없이 가고

오라 한적 없다마는

오겠다는 전갈 없이 오겠단다.

 

가라한다 가는 것도

오라한다 오는 것도 아니겠지만

가겠다는데 가지마라 아니 하고 싶고

오겠다는데 오지마라 하고픈 마음도 없다.

 

가겠으면 그냥 가면 뭐라 하랴마는

한 일자 이마에 한 획 깊숙이 그어놓고

눈 밑에 하양곡선 그려놓고 가는 심사는 뭐라더냐

 

가라 한적 없건마는

자리 내어줌이 못내 섭섭하셨던가.

아님, 전임자로 오겠다는 후임자에

내 왔다갔노라 흔적 남기고 싶어서일까?

 

 

 

 

 

 

 

이제 몇 시간 후

저 찬란히 빛나는 태양이

서쪽 바다에 몸을 담그기를 기다리며

마지막 잎새처럼

동무들 다 떠나보내고 홀로 외로이 붙어있던

마지막 달력 한 장

오는 세월에 자리 내어줄 채비를 한다.

 

한날 한 날 저물어 간 날들을 뒤돌아보면

집사람에게 갑자기 찾아들은 병마에

놀라기도 했지만

수술도 잘되었고 꾸준히 치료받으면

더 이상의 어려움이 없으리라는 말씀에

놀란 가슴 쓰려 내렸던 것 말고는 그리 굴곡 없이 보냈다마는

 

마지막 가는 한해의 끝자락

삼일 남겨놓고 미친개에 물리듯

한 사람으로 인하여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는 그 상처를 치료도 못 한 채

아픔을 안고 한해를 보내게 되었고 새해를 맞게 되었다.

 

차라리 한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이라도 일이 마무리 되었으면

모든 것 훌훌 털고 상처를 치유하며 새해를 맞이하겠으나

 

그것이 나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마음의 상처와 그 상처에서 오는 아픔을

가슴에 안고 새로운 한해를 맞게 되었다.

 

영원 속으로 떠나는 저 한 해

얼굴에만 흔적을 남긴 것이 아니라

깊숙한 가슴 속에도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채 떠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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