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상흔-2

心田農夫 2010. 1. 9. 18:28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정 안 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마음이 푸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푸른 잎새로 살아가는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언제 보아도 언제나 바람으로 스쳐 만나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

밤하늘의 별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유혹과 폭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의연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언제나 마음을 하늘로 열고 사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오늘 거친 삶의 벌판에서

언제나 청순한 마음으로 사는

사슴 같은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모든 삶의 굴레 속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언제나 화해와 평화스런 얼굴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오늘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서

나도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아침 햇살에 투명한 이슬로 반짝이는 사람

바라다보면 바라다볼수록 온화한 미소로

마음이 편안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결코 화려하지도 투박하지 않으면서도

소박한 삶의 모습으로

오늘 제 삶의 갈 길을 묵묵히 가는

그런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 하나 곱게 간직하고 싶다

 

 

이 아픈 마음을 다독여 줄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 응어리진 이 마음을 풀어줄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상흔을 마음에 안고 생활을 하려니 너무도 아프고 힘이 들고 괴롭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아물어야 가겠지만

지금은 나날이 미칠 것만 같고 마구 마구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책을 읽어도 책상에 앉아도

도무지 그 놈의 사이코패스 같은 인간에게 당한 일이

너무도 억울하고 속상하고 답답하다.

 

이제야 모든 것이 끝나고

혼자서 상흔의 흔적을 지워나가야 하는데

운전 중에도, 일을 하다가도, 잠자리에 들어 누워서도

지워지지 않고 생각이 날 때마다

그 생각이 나를 괴롭혀 너무도 힘이 든다.

 

오늘도 잊으려고 책을 펴 들어서 몇 장을 넘겨보아도

무엇을 읽었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 몰라

그만 책을 덮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시집을 펴들고 보다 눈에 들어온 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란 시를 보며

아! 저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인데

 

자신을 위로를 해본다.

저런 아름다운 사람과

오늘 만나 차라도 한잔 놓고

아니면 술자리라도 하며

수다라도 떨고 싶고 겪어 던 일들

넋두리 한마당 풀어놓고도 싶다.

 

 

젊은 날의 초상

 

                      송 수 권

 

위로받고 싶은 사람에게서 위로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슬픔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에게서 슬픔을

나누는 사람은 행복하다

더 주고 싶어도 끝내

더 줄 것이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

강하나 사이에 두고 그렇게 젊은

날을 해매인 사람은 행복하다

오랜 밤의 고통 끝에 폭설로 지는 겨울밤을

그대 창문의 불빛을 떠나지 못하는

한 사내의 그림자는 행복하다

그대 가슴속에 영원히 무덤을 파고 간 사람은

더욱 행복하다

아, 젊은 날의 고뇌여 방황이여

 

 

위로 해주는 사람이 있어 위로 받고 싶고

그래서 다시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 슬픔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댜면 슬픔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다시 행복해 지고 싶다

 

타향살이가 싫다. 고향이 너무도 그립다.

포항 땅이 정말 싫다. 내 자란 서울이 너무도 가고프다,

기독교인들이 정말 정말 싫다

내 그동안 교회라는 곳을 50여년 다닌 것이

그렇게 후회가 될 수가 없다.

 

그렇게 애를 먹인 그 사이코패스

기독교를 믿는단다.

그리고 모대학의 교수란다.

그 인간은 사회 부적응 환자다.

심리를 공부한, 심리상담 1급의 자격을 가진

내판단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자신 밖에 모르는 인간

 

그들이 주장하는 그 교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교리란 말인가?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들의 교리라는 것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한 번의 용서도 어려운데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리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이런 교리를 어찌 지킬 수 있을까?

처음부터 지킬 수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 인간이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차라리 윤리적인 삶을 사는 것이

인생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아닌가.

삼강오륜(三綱五倫)만 있어도

나의 인생은 올바로 살아 수 있을 것이다.

 

지킬 수도 없는 허울 좋은 교리보다

달콤하게 사랑이란 이름을 내세우는 것보다

이제 영원히 가슴속 무덤에 기독교를 묻고

인간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윤리를 배우며 살리라

 

알면서도

 

 

이기는 것이 지는 것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이기려고 하다 패자의 삶을 살아간다.

 

채우려면 안 채워진다는 것

비워야만 채워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채우려고 하다 허탈한 삶을 살아간다.

 

살려하면 죽는 다는 것

죽으려하면 살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살겠다고 하다 죽음 같은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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