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하여 생각하기

수채화란 이름

心田農夫 2010. 1. 26. 13:14

지난 토요일 아침

집사람과 함께 고속버스로 서울로 향했다.

나이 먹어 가면서 이제는 차를 몰고 가지 않고

대중교통인 고속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차창 넘어 스쳐지나가는 밖의 풍경을 보는 것도

처음에 나름대로 운치가 있더니,

그 운치가 조금씩 싫증이 나기에

의자를 한껏 눕히고 몸을 눕혀 잠을 청해보는데

 

의자에 기대어 한숨 잠들면 그리 지루하지 않으련만

까다로운 성격 타일까? 도무지 잠은 오지를 않고

출발한지 3시간쯤 차속에 의자에 갇힌 채 있다 보니 지루함이 몰려든다.

 

어제도 세시 넘어서 잠들고

아침 7시 조금 못되어 일어났으니 피곤하기는 한데

도통 의자를 눕히고 눈을 감아보아도 잠이 오지 않는다.

 

버스의 의자를 원래대로 세우고 주머니의 시집을 꺼내어

한 장 한 장 책갈피를 넘기며 몇 편의 시를 음미 하여 보지만

집중이 되지를 않는다.

 

시집을 놓고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초점 잃은 눈으로 밖의 풍경에 눈길을 보내지만,

그게 그것이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아파트의 벽면에 써진 ‘수채화’란 글귀가

맑은 공기가 폐부에 닿았을 때 마냥 왠지 모를 신선함이 느껴진다.

아파트 이름이 ‘수채화’라, 참으로 신선 그 자체다,

 

요즈음 모든 상품의 이름이

외국어이고 그래야 잘 팔린다던가?

더구나 이름 있는 건설회사에서 짖는 아파트의 이름들은

거의 다 외국어로 작명되어 있는데

어찌 아파트의 이름을 ‘수채화’라 지을 생각을 했을까?

 

궁금증이 생기면서

어느 건설회사에서 지은 아파트일까?

저 아파트의 구조는?

작명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한 번 그곳에 가서 아파트의 내부구조와

그 아파트의 주변 여건은 직접 보고 싶어진다.

 

분명 그 아파트의 내부와

주변은 친환경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여정의 지루함을 사라지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글은 어느 사물이나

자연의 어떤 소리도 글과 말로 표현 할 수 있는

우수한 글이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글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일상생활에서 대화를 할 때나

글을 쓸 때에도 외국어, 외래어를 쓰는 것이 유식한 것 같고

외국어를 잘 구사하여야 지식인인 것처럼 인정하는 우리들이 아니던가.

 

얼마 전 우리의 글, 한글이

인도네시아 소수 민족의 공식문자로 처음으로 수출이 되었단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주에 속한 부퉁섬의 바우바우 시에

문자가 없어 사라질 위기 놓인 찌아찌아어를 표기하기 위해

한글을 도입해다는 뉴스와 얼마 전 그 소수 민족의 대표들이

우리의 글과 말 그리고 우리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웠고 우리의 글을 다 수출하였다는 데에

정말 한글이 우수하다는 것을 새삼 알았고 뿌듯한 마음이었다.

 

비록 소수 민족이지만 우리의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언어를 문자를 표기하기 위해 한글을 도입하였다는데

 

정작 우리들의 지식인들은

우리의 한글만으로는 정확한 뜻을 전달 할 수 없다며

한자와 병행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또 어떤 학자와 정치인들은 영어공용화를 하여야

세계화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을 하는 것을 듣고 보았다.

 

지식인들 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그러한 한심한 작태를 보고 들을 때마다 화가 치민다.

 

내 자세히는 몰라도 영어공용화를 한

필리핀은 60~70년대에는 우리나라보다  더 잘살던 나라였고,

북한은 우리처럼 외국어 드려다 외래어를 쓰지 않고

자신들에게 맞게 변역(?)하여 쓰고 있다하지 않던가.

 

내 잘은 몰라도 몇 가지 예로 들면

농구에서

‘덩크 슛’은 ‘꽂아 넣기’

‘골밑 슛’은 ‘륜(윤)밑 넣기’등으로

축구에서

‘코너킥’을 ‘모서리차기’로

‘골키퍼’를 ‘문지기’등으로 사용하다고 하던데.

그런 그들이 크게 불편하다면 그리 사용을 할까?

 

서양식 건축물인 아파트

그 아파트의 이름이 ‘수채화’라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고 신선함이 느껴진다.

 

요즈음은 10월 9일 한글날에

학교에서는 이제 기념행사도 하지를 않고

국경일도 취소가 되어 학생이나 직장인들도 쉬지를 않는다.

 

몇 년 전인가

손님으로 온 고등학생이 “한글날도 있어요.”하는

말을 듣고는 놀란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귀중한 한글이 어떠한 이유로 탄생이 되었던가,

어려운 한자 때문에 읽고 쓰지 못하는 백성들을 측은하게 생각하신

세종대왕께서 백성들을 위해서 창제하신 우리의 글이 아니던가.

 

그 한글을 ‘언문’이니

‘한자 없이는 제대로 된 뜻의 전달이 안 된다.’

그리고 ‘세계화를 위해서 영어 공영화를 해야 한다.’는 등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단어만 볼 때는 어느 뜻인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어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단어의 앞의 글과 뒤의 글,

전체의 문맥을 통하여 본다면 한자 없이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그리고 꼭 영어를 써야 세계화가 되는가,

우리의‘ 난타’ 공연이 세계인의 호평을 받았고,

뮤지컬 ‘명성황후’가 세계적인 뮤지컬에 뒤지지 않은 호평을 받았다.

그 뿐인가, 우리의 전통‘사물놀이’를 세계인들이 좋아 한다고 하지 않던가.

 

일본도, 프랑스도, 그 외의 많은 선진국들이

자국의 말과 글을 가지고도 세계 속에서 당당하지 않던가.

 

일제 침략시절에는 친일이라는 사대주의에 물들었고

2차 대전 후 미국이 세계의 강대국으로 떠오르자

이제는 친미주의자들이 친미를 외치고 있다.

 

얼마 전‘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자

자신들, 조상의 이름을 그 사전에서

삭제 시켜달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지?

 

한문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 영어 공용어를 주장하는 사람들

아마 ‘친일인명사전’에 이름 등재된 사람들의 후손이 아닌지 몰라

 

그런 그들 배운 것 많고 재산 많으니,

한글에 대하여 한문이 어떻고 영어가 어떻고 그러면서도

먹을거리는 수입산 고기 안 먹고 한우고기만 먹을 것이고,

외국에서 수입된 농산물도 안 먹고 국내에서 생산된

친환경농산물만 먹을 걸, 아마도

 

어느 명인의 말씀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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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은 언제가 블러그에 올렸던 것인데 다시 옮겨 본다

 

 

식민지의 국어시간

 

                                 문 병 란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 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신사참배를 가던 날

신작로 위로 무슨 바람이 불었던가,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고

일본놈에게 붙어야 잘 산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조상도 조국도 몰랐던 우리,

말도 글도 성까지도 죄다 빼앗겼던 우리,

히노마루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 앞에서

조센징의 새끼는 항상 기타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조선말 쓴 날

호되게 뺨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왜 나더러 일본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혀가 꼬부라지고 헛김이 새는 나의 발음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국어선생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간다는 한글,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좋은 글,

나는 배고픈 언문 선생이 되었다.

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

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은데

윤동주를 외우고 이육사를 외우며

나는 또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어릴 적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일본말,

그날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는데

다시 내 곁에 앉아 있는 일본어 선생,

내 곁에 뽐내고 앉아 있는 영어선생,

어찌하여 나는 좀 부끄러워야 하는가.

 

누군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데

까아만 칠판에 써놓은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글자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 슬픈 국어 시간이여.

 

 

※ 히노마루 : 일장기를 가리키는 일본말.

       ※ 기타나이 : ‘더러운 놈’이라는 뜻의 일본말.

  ※ 센세이 : ‘선생님’이라는 뜻의 일본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