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아두기

말씀을 회초리 삼아

心田農夫 2010. 2. 4. 14:01

 

내 밭이 넓지 않아도

배하나 채우기에 넉넉하고

내 집이 좁고 누추해도

몸 하나 언제나 편안하네.

밝은 창에 아침 햇살 오르면

베개에 기대어 옛 책을 읽고

술이 있어 스스로 따라 마시니

영고성쇠는 나와 무관하네.

무료할 거라곤 생각지 말게

진정한 즐거움은 한가한 삶에 있나니

                                            사재 김정국

 

누운 채 청산을 사랑하느라

날마다 늦어서야 일어나노니

뜬구름도 흐르는 물도

시 안으로 다 들어오네.

우스워라!

이내 몸은 선골(仙骨)이 아니런가.

뱃속 가득한 연하(煙霞)

배고픔을 못 고치네.

                                여항시인(閭巷詩人) 홍세태

 

 

위의 시는 「선비답게 산다는 것」에 실려 있는 옛 선인들의 시다. "진정한 즐거움은 한가한 삶에 있나니" 라는 양반 사재의 시구와“뱃속 가득한 연하 배고픔을 못 고치네.”라는 천민시인의 시어는 너무도 비교가 된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사재 김정국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책에 의하면 “20여 년 동안 팔여(八餘}를 실천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생업을 돌보지 않은 채 교육에만 전력했다. 1538년 조정의 부름을 받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기까지 그의 청빈한 삶은 계속되었다. 이렇게 팔여라는 호에는 불우한 시절을 원망과 증오로 보내지 않고 여유와 청빈을 즐기며 인생의 위의(威儀)를 지키려 했던 지혜가 빛난다.”

                    ----------------------중략----------------------

이미 늙어버린 사재에게 부자 친구가 하나 있었다. 이 친구가 재물을 탐욕스럽게 모은다는 소문이 사재의 귀에 들려왔다. 친구의 노탐(老貪)이라 생각한 사재는“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재물에 탐하는가?”

                                                            「선비답게 산다는 것」중에서

 

친구의 탐욕에 대해 과감히 꾸짖는 편지를 보내는 것에서 청빈의 여유와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선비의 기풍을 본다.

 

“내 밭이 넓지 않아도

배하나 채우기에 넉넉하고

내 집이 좁고 누추해도

몸 하나 언제나 편안하네.”

 

이 한편으로 처음 만난 그 분의 인생관, 그의 철학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선비의 청빈한 삶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또 한사람 삶에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명리(名利)를 훌쩍 벗어던져 마음에 얽매인 것을 없애지 않고선 시다운 시를 짓지 못한다. 시를 위해 명예와 이익을 포기할 자는 과연 누구일까? 신분이 미천하고 가난한 여항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이야기다. 세상의 권력과 부를 독점한 양반들이 그렇지 못함을 꼬집은 말이기도 하다.”

                  ----------------------중략----------------------

평생 비천한 신분 때문에 숱한 인간적 고통과 좌절을 겪어야만 했던 홍세태. 그 고통을 시에다 쏟아 부어 그는 우리 시사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불우한 자신을 위로하고 세상을 개탄하는 마음이 드러난 시가 많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중에서

명예와 이익을 포기하여야 시다운 시를 짓는다는 시인.

 

“뜬구름도 흐르는 물도

시 안으로 다 들어오네.

우스워라!

이내 몸은 선골(仙骨)이 아니런가.”

 

자신의 처한 환경을 비관하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신선의 골격을 가졌다고 시에 표현을 한다. 대단한 자부가 아니던가. 조그마한 문제에도 좌절하고 작은 상처에도 아파하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위의 두시를 보며, 늘 마음공부를 한다하면서 세파에 초연하지를 못하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다시 본다.

나약해 지기만하는 자신에게 다산 선생의 말씀으로 회초리 삼아 마음을 다잡아 본다.

탁발을 나왔다 스승의 스승인 다산에게 들려 인사를 올렸던 자홍이란 스님에게 주신 말씀이란다.

 

“어찌 나왔느냐?”

“먹을 것이 다 떨어져 양식을 탁발하러 나왔습니다.”

“승려가 도를 닦아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을 배고파해야지, 그까짓 창자의 굶주림을 못 이겨 이 먼 데까지 나왔더란 말이냐? 배불리 먹어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고, 절집을 높이 지어 단청을 입히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표범의 가죽이나 공작새의 깃털 같은 것일 뿐이다. 너의 전전긍긍은 고작 육체의 굶주림과 물질의 가난에 있을 뿐이로구나. 가슴속에 진망유무(眞妄有無)의 분별을 길러, 무엇이 헛되고 무엇이 참된 것인지를 깨닫는다면 그까짓 창자의 배고픔은 문제도 안 될 것을! 네 목구멍을 위해 애를 쓰고 화장실에 충성을 하는 정성으로 깨달음의 공부에 힘을 쏟으면 좋으련만! 아, 안타깝구나.”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중에서

 

조그마한 문제에도 좌절하고 작은 상처에도 아파하는 자신. 아직도 마음을 채 다비우지 못한 것이리라. 이기적인 삶을 살려고 하니 좌절도 오고 아픔의 고통도 겪는 것이리라. 자신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훈련을 통하여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 이타적인 삶을 산다면 아픔의 고통도 좌절도 나와는 무관한 단어들이 되리라. 화려한 표범의 가죽이나 아름다움의 극치인 공작새의 깃털도 어느 순간 사라질 것들이 아니던가, 사라질 것에 마음을 두지 말자. 나의 육신이라는 것,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으로 이루어 졌다 아니하던가? 언젠가는 사라질 내가 아니던가, 더 이상 아파하지 말고 더 이상 마음에 두지 말자. 잊는 것도 마음공부의 하나가 아니더냐. 마음의 텃밭을 가꾸자 했던 심전 농부가 아니었더냐? 고통을 잊자, 잊어야 한다. 번뇌를 버리자, 버려야 산다하지 않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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