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아두기

출근길에 주어진 화두

心田農夫 2010. 3. 23. 13:08

 

어두움이 채 물러나기전 새벽 미명에

우리가족들은 저마다 갈 길을 가기위해 서두른다.

큰 딸은 새벽 6시에 일어나 스스로 아침을 챙겨먹고

학교에 갈 준비로 분주히 움직인다.

 

큰아이의 움직임이 집사람을 깨워 일어나게 한다.

집사람 자신은 아침식사를 안하면서도

아침을 안 먹으면 일을 못하겠다는 나를 위해 아침상을 차린다.

내 아침을 먹고 나면 밤늦도록 공부하던 둘째 딸아이 씻고 나와

식탁에 홀로 앉아 밥을 먹는다.

 

그사이 큰딸아이가 먼저 인사와 함께 집을 나서고

그 뒤를 이어 집사람 출근을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서면

둘째의 등교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렸다

출근길에 있는 둘째아이를 학교 근처에

내려주고서야 조금 여유로움을 갖게 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는 두 딸과 함께 아침을 먹었는데

그 이후에는 아침식사를 한 번도 같이 먹을 수가 없다.

육상의 계주를 하듯 한사람 먹고 나면 또 한사람

자신의 시간에 맞추어서 아침을 먹고는 집을 나서는 것도

바통을 받고 출발하는 계주 선수같이 순서대로 나선다.

 

오늘도 여느 날과 똑같이 둘째의 등교시간에 맞추기 위해

조급하게 운전을 하여 학교 근처에 내려주고서야

조급함을 떨쳐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직장으로 향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차의 속도도 자동차 전용도로의

최고 속도 80km 보다 적은 60km로 2차선으로 천천히 가는데,

1차선의 차들이 100km 이상의 속도로 바람을 일으키며

무서운 속도로 내차를 추월해 쏜살같이 지나.

잠시 잠깐 사이에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지를 않는다.

 

추월해 사라지는 차들을 보면서

저들은 어디로 가는 것이기에

저리도 서둘러서 급하게 가야 하는 것일까?

생각을 하다가 문뜩 조금 전까지

나 역시 딸아이의 등교시간을 맞추기 위해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운전을 했던 것이 아니던가.

 

마음은 나의 마음이요,

그 마음은 둘이 아닌 하나인데

어째서 그리도 조급하였던 마음이

단 순간에 어찌 이리도 여유로울까?

분명 마음은 나의 마음이건만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함이 아니던가?

 

법정스님의 글이 떠오른다.

“온전한 인간이 되려면

내 마음을 내가 쓸 줄 알아야 한다.”

원효대사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여

일체만물이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였는데

 

그 짧디. 짧은 시간에 어이해 그리 변화가 심할까?

생각 없고 지조 없는 사람이 되어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하나 주체하지 못하다니

조급함도 나의 마음이요, 여유로움도 나의 마음이 아니었더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오늘 마음공부의 화두로 삼아본다

 

 

 

 

                          <내 마음도 저 저수지처럼 비추어 볼 수 있다며> 

 

 

 

마음의 주인이 되라

 

 

내 마음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며

나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한도인(閑道人)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하는 중생이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다.

 

인간의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런 마음을 돌이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법정 잠언집. 유시화 엮음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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