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철새가 아닌 변절자라 부르자

心田農夫 2010. 4. 1. 16:01

 

우리나라에 오고 가는 철새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계절에 따라서 여름새와 겨울새로 나뉘고 오는 목적에 따라서도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른 봄 남녘에서 날아와 우리나라에서 여름을 나며 번식도 하고 지내다 월동을 하기 위해서 가을에 떠나왔던 따스한 남쪽으로 다시 떠나는 철새를 여름새라 하고 그 종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부에게 박의 씨앗을 물어다 주었다는 제비를 비롯하여 산솔새ㆍ삼광조 두견이 등이 있다.

 

그리고 북쪽에서 번식을 하고 지내다 우리나라에 겨울을 지내려고 가을에 날아 월동을 하는 겨울새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겨울새들은 쑥새ㆍ개똥지빠귀ㆍ기러기류와 야생 오리류 그리고 고니류들이 있다. 그리고 도요류ㆍ물떼새류ㆍ꼬까참새ㆍ흰배멧새ㆍ제비갈매기 등은 북쪽에서 번식하고 가을에 한반도를 통과하여 남쪽을 날아가서 월동을 하고, 이듬해 봄에 다시 한반도를 경유하여 북녘의 번식지로 이동하는 새들을 나그네새라 한다, 여름새ㆍ겨울새ㆍ나그네새 이들 모두를 우리는 철새라 한다. 이들 철새들은 살기 위해서 수백에서 수천km를 날아서 이동을 한다.

 

그런데 자신의 이익과 탐욕을 위해서 소신도, 신념도, 철학도, 정치사상도 없이 선거철만 되면 오직 공천을 받기위해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지역단체장이 되기 위해, 지역 군의원, 시의원, 구의원이 이라도 해보겠다고,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천박한 무리들을 철새정치인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 아닌가?

 

철새들은 삶을 위해서 머나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때로는 죽음까지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독립투사들처럼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정치를 하라면 아마도 아무도 할 인간들이 없을 것이다. 또 다시 선거철이 다가오니, 공천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탈당을 하여 새로운 당을 만들었다가 이제 선거철이 되니 자신들의 힘으로는 안 되겠다 생각을 했던지, 어느 곳에 줄을 서야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을까, 하는 마음인지는 몰라도 탈당을 했던 당으로 들어가겠다는 사람도 있고 그 당과의 합당은 안 된다고 저당과 합당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당의 대표도 있다,

 

가만 하는 짓거리를 보노라면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인간의 마지막 보류인 자존심도 없는 인간들을 왜 철새정치인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철새들은 그래도 우리들에게 볼거리라도 제공하지만, 정치인들은 사리사욕에 싸움질 밖에 보여주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지조론」을 쓴 동탁 조지훈님이 자신의 「지조론」에서 표현한 것처럼 그들을‘변절자’라고 부르고 표현하여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왜, 애꿎은 철새에 비유 삼는 것은 잘못된 것이리라. 조지훈이「지조론」을 썼을 당시와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서 많은 시간적 상황적인 차이가 있다 하겠지만, 그의 「지조론」을 지금 읽어 보아도 작금(昨今)의 정치상황에 대하여 그 내용을 적용한다고 하여도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라 생각을 한다. 나는 우리의 정치인들에게 조지훈의 「지조론」을 꼭한 번쯤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그 책을 읽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싶어서이다.

 

변절(變節)이란 무엇인가, 절개를 바꾸는 것, 곧 자기가 심선으로 이미 신념하고 표방했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철이 들어서 세워놓은 주체의 자세를 뒤집는 것은 모두 다 넓은 의미의 변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하는 변절은 개과천선(改過遷善)의 변절이 아니고, 좋고 바른 데서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변절을 변절이라 한다. 일제 때 경찰에 관계하다 독립운동으로 바꾼 이가 있거니와 그런 분을 변절이라고 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파(親日派)로 전향한 이는 변절자로 욕하였다. 권력에 붙어서 벼슬하다가 야당이 된 이도 있다. 지조에 있어 완전히 깨끗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들에게도 변절자의 비난은 돌아가지 않는다. 나머지 하나 협의(狹義)의 변절자. 비난 불신의 대상이 되는 변절자는 야당전선(野黨戰線)에서 이탈하여 권력에 몸을 파는 변절자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이름을 역력히 기억할 수 있다.

                                                       조지훈의「지조론」중에서

 

오늘날 여당이 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지만, 여당이 정치를 잘못하고 있다고 국민들을 위하여 정권에 대한 신판의 성격이 있는 이번선거에서 거대 여당을 제치고 반드시 승리하려면 야당에 공조협력이 필요하다고, 단일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고 모여보지만 결국은 우리당이, 내가 후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인 태도는 참으로 한심한 작태가 아닌가. 정치를 하신다는 분들 대다수가 최고의 학벌의 지식을 갖추고 있으리라 그러나 슬기로운 지혜는 없는 것 같다. 잠시 잠깐 뒤를 돌아보면 그 답이 나오는데 그것을 모르니 내 지혜가 없다는 것이다. 광주의 시민들이 생명을 담보로 했던 5.18광주 민주화항쟁을 밑거름으로 6.10민주화항쟁(어느 시각은 5.18항쟁과 6.10항쟁을 별개로 보는 시각도 있다.)을 통하여 어렵사리 6.29선언, 대통령 직선제라를 커다란 민주주의 실리를 얻어놓고는 야당의 김대중, 김영삼 두 분의 후보단일화에 실패로 말미암아 노태우후보에게 그만 그대통령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던 사실을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 당시 노태우후보는 36% 득표를 얻었고 김영삼후보는 28%의 득표를, 김대중후보는 27%를 득표를 얻었다.

 

오늘의정치가들에게 선비의 삼엄한 지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 줄을 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 정당운동을 통한 정치도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정책을 통해서의 정상(政商)인 이상 백성을 버리고 백성이 지지하는 공동전선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구복(口腹)과 명리를 위한 부동(浮動)은 무지조(無志操)로 규탄되어 마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이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의 자격으로 대망하는 정치가는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직업정치인 보다 지사적(志士的) 품격의 정치지도자를 더 대망하는 것이 국민전체의 충정(衷情)인 것이 속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조지훈의「지조론」중에서

 

정치를 하려고 한다면 백년의 앞은 못 본다 하더라도 최소한 몇 십 년 정도의 앞을 볼 수 있는 안목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말을 하면 정치인이 무순 무당이나 점쟁이처럼 앞에 올 일을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겠냐 하겠지만, 지난 일들을 살펴서 분석을 하고 그 분석을 통하여 교훈을 얻고 그 교훈을 오늘의 현실상황에 대입하여 현실을 똑바로 주시(注視)한다면 다가올 몇 십 년 후에 전개된 정치 상황을 볼 수 있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을 갖게 되리라고 본다. 그러한 수고와 노력은 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안목이 없음은 탓하지 않으면서, 그저 국민들이 자신의 당, 자신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며,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있는 국민들을 팔고 있다. 그 근거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답할 수밖에 없는 설문조사를 내세우고 있다.

 

변절자에게는 저마다 그럴 듯한 구실이 있다. 첫째, 좀 크다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백이(伯夷), 숙제(叔齊)는 나도 될 수 있다. 나만 깨끗이 굶어 죽으면 민족은 어쩌느냐가 그것이다. 범의 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는다는 투의 이론이요, 그 다음에 바깥에선 아무 일도 안 되니 들어가서 싸운다는 것이요, 가장 하치가, 에라 권력에 붙어서 이권이나 얻고 가죽이나 고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굶어 죽기가 쉽다거나 들어가 싸운다거나 바람이 났다거나 간에 그 구실을 뒷받침할 만한 일을 획책(劃策)도 한 번 못해 봤다면 그건 변절의 낙인밖에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어떤 선비도 변절하여 권력에 영합해서 들어갔다가 더러운 물을 뒤집어쓰지 않고 깨끗이 물러나온 예를 역사상에서 보지 못했다.

                                                         조지훈의「지조론」중에서

 

우리말에 이런 말이 있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고, 하물며 말 잘하는 달변가인 정치인들이 어이 할 말이 없겠는가마는, 그러나 어떠한 말을 해도 좋다만, 제발 가만히 있는 국민들을 그 더러운 입에 올리지도 말고 나라의 주인이라고 당신들이 말하는 민초들의 이름을 팔지를 말라는 것이다. 그래도 미안했던지 매번 자신들이 한 설문조사가 자신들에게 국민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들을 한다. 그것이 자신들은 양심가로서 양심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대면서.

 

변절자에게도 양심은 있다. 야당에서 권력에로 팔린 뒤 거드럭거리다 이내 실세(失勢)한 사람도 있고 갓들어가서 애교를 떠는 축도 있다. 그들은 대게 성명서를 낸바 있다. 표면으로 성명은 버젓하나 뜻있는 사람을 대하는 그 얼굴에는 수치 감정이 역연하다. 그것이 바로 양심이란 것이다. 자기변명은 도리어 자기를 깎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지훈의「지조론」중에서

 

오늘 같은 현실에서 정치인들에게 지조를 지키라고 하는 것이 어쩌면 무리 일지 모르겠다. 야당이 여당과 합당을 하는 것도, 야당 인으로 있다 여당으로 들어가 여당 인이 되는 것도, 자신의 확고하고 뚜렷한 소신과 신념이 있다면야 그 누가 탓하리요. 아니 그런 분들은 누가 탓한다 해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얼굴에 수치의 감정을 아니 가질 것이다. 그러나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라는 명분을 내세워 놓고는 자신의 안위와 자신의 명예와 권력의 한 자락을 차지하기 위해서 나라에 피해를 입히고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정치인들이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기 신념으로 일관한 사람은 변절자가 아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치욕에 김상헌이 찢은 항서(降書)를 도로 주워 모은 주화파(主和派) 최명길은 당시 민족정기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으나 심양(瀋陽)의 감옥에서 감상헌과 같이 갇히어 오해를 풀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얘기다. 최명길은 변절의 사(士)가 아니요 남다른 신념이 한층 강했던 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민족 전체의 일을 위하여 몸소 치욕을 무릅쓴 업적이 있을 때는 변절자로 욕하지 않는다. 앞에 든 최명길도 그런 범주에 들다.

                                                       조지훈의「지조론」중에서

 

며칠 전에 근처 전문대 학생들이 손님으로 왔었다. 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현실에 정치에서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들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모르겠어요. 그저 누가 정치를 하던지 취직이나 잘 되면 좋겠어요. 하면서 생존경쟁(生存競爭)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이겨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한

다. 그래서 내가 정치인이라면 공인이니, 자신의 안위를 위한 욕망보다는 자신보다는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것이 정치가가 아닐까? 했더니,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식이든 성공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머지는 성공을 하고 나서 생각을 해 볼 일이 이라며, 군대의 힘으로 정권을 잡아 군사독재정권을 행사했던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어찌되었건 그 사람들 잠시 감옥에 갔다 오기는 했지만 지금도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혹시 조지훈을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모른다고 하기에 중학교국어시간인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승무’란 시에 대하여 배운 적 없냐고 했더니 기억이 없단다. 그래서 청록파와 청록파 시인에 대하여 시험에 나왔을 텐데 했더니, 청록파는 생각이 난단다. 그 청록파 시인 중 한분이신 동탁 조지훈님이 쓰신 「지조론」것이 있는데 한번 읽어 보라고 했더니 한 학생이 묻는다. 자세히 가르쳐주었더니, 꼭 보겠노라 하며 갔다. 퇴근을 하여 집에 들어가 씻고는 오랫동안 묵묵히 자리를 잡고 있던 조지훈님의 「지조론」을 꺼내 들고 새벽녘까지 읽었다.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 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인고(因苦)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者)이기 때문에 지조 없는 지도자, 배신하는 변절자들을 개탄(慨嘆)하고 연민(憐憫)하며 그와 같은 변절의 위기의 직전에 있는 인사들에게 경성(警醒)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抗拒)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 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인욕(因辱)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정신의 자존(自尊) 자시(自恃)를 위해서는 자학(自虐)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조지훈의「지조론」중에서

 

동탁 조지훈은 말한다. 지조를 지키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최악의 인욕(因辱)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지 말라고, 자존(自尊)과 자시(自恃)를 위해서 자학(自虐)과도 같은 생활을 견딜만한 힘이 없다면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어려운 지조를 지키라고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단지 자기가 한 말, 자신이 내세웠던 신념마저도 팽개치며 언제 그랬냐. 이당에서 닭 잡아먹었으니, 이제는 저당에 가서 오리 잡아먹겠다고 가는 정치인들, 그 몰염치한 정치인들을 ‘철새 정치인’이라고 부르지 말고 ‘변절자’로 부르자는 것이다.

 

철새는 삶을 위해서 머나먼 길을 목숨을 걸고 날아가는 것이다. 살자하니 목숨을 걸면서라도 날아가는 것이다. 날아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철새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먹잇감만을 구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떠도는 하이에나 같이 이당에 저당으로 저당에서 이당으로 자신의 이해타산

(利害打算)만을 위해 움직이는 그들은 국민들에게 거짓말하는 거짓말쟁이요. 사기꾼이 아니던가, 그런 그들을 철새에 비유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너무도 후한 대접이 아닌가, 이제는 ‘철새 정치인’이라 부르지 말고 ‘변절자’라 부르자 .그렇게라도 하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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