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미치자, 미쳐야 살 수 있다.

心田農夫 2010. 5. 19. 14:24

어제 퇴근해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 참으로 이해가 안 되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보훈처에서 부르지 못하게 했다는 소식에 대해

16세기~17세기에 살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아마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國家). 선진국이라는 프랑스와

미국의 국가(國歌)에 대하여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들어보고 읽어보면 참으로 잔인하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선진국이라는 나라,

프랑스와 미국에서 그들은 국가(國歌)로 부르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의 귀한 목숨을

나라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초개(草芥)같이 버린 사람들이 있었기에

자신들의 나라 프랑스가, 자신들이 개척한 미국이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은 물론 후손들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해서

그들 프랑스, 미국인들은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국가로 지정해 부르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의 민주주의가 성숙하게 자랄 수 있던 것은

5.18날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려 민주주의 밑거름이 되었기에

민주주의가 자랄 수 있었고 6.29도 이끌어 낼 수도 있었고

죽어가던 민주주의도 살아났던 것이 아니더냐?

 

국가(國歌)로 지정해 달라는 것도,

시도 때도 없이 부르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민주주의를 위해서, 국가(國家)를 위해서 자신의 한 목숨 아끼지 않던

새벽이술처럼 사라져간 용감한 시민들의 넋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겠다는 것이 아니던가 말이다.

 

그것을 식순에 넣으면 왜? 안 되는 것인가?

그리고 그 자리에서 부르면 왜? 안 되는 것인가?

그것,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부르면 안 되고

높으신 분 식장에서 물러날 때 ‘방아타령’을 틀겠다고 하는 나라

그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래도 힘없는 민초로 태어났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의 인생의 황금기에 34개월13일이라는 세월을

젊음 받쳐 군대에서 복무를 하였고

그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예비군이다 민방위다

나라를 위해서 시간을 투자했다.

 

그것에 대하여 한 번도

후회하거나 잘못 했다고 생각 한 적은 없었지만

어제는 정말 후회가 되었다. 진작 이민이나 갈 것을 하면서

 

어제 늦은 시간까지 잠이 오지를 않아서

식탁에 청승맞게 혼자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면서 A4 용지에 인쇄된

프랑스의 국가, ‘La Marseillaise (라 마르세예즈: 마르세유 군대의 노래)’와

미국의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성조기 : 별이 빛나는 깃발)’을

‘임의 위한 행진곡’과 비교해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들었다.

 

나는 지금 몇 세기에 살고 있는 것일까?

21세기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21세기란, 2001년부터 2100년을 말함이 아니던가?

달력을 보니 분명 2010년이라고 뚜렷이 적혀 있는데.

그렇다면 분명 21세기에 살고 있음도 분명한데,

그 21세기가 16~17세기쯤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살아보지도 않았던 그 시기에 살고 있다는 착각을 느끼는 것은 왜 일까?

그리고 나의 조국, 내가 태어나서 살아온 대한민국은 어떤 한 나라인가?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가 보훈처란 어떤 곳이고 무엇을 하는 곳인가?

고개를 가웃가웃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모르겠다.

 

얼큰히 취기가 오르도록 한잔 두잔 마시며 생각을 해도 모르겠다.

머리를 잘래잘래 흔들어 보아도, 내 자신 내 머리를 쥐어박아도

알 수가 없으니 미칠 것 같다. 그러다 문뜩 깨달았다.

 

그래 똑바로 보아서 이해가 안 되면 거꾸로 보면 될 것이야

거꾸로 본다는 것 그것은 멀쩡한 정신으로 보면 안 되는 것이야

그러면 어떻게? 그래 미쳐서, 거꾸로 서서 보면 바로 볼 수 있을 테니까

 

나라가 온통 거꾸로 돌아가니 미치는 것 아니야?

이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미쳐야 하는 것 아니야?

미친놈이 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것 아니야?

 

그래 이제 나이도 먹고, 가진 것도 없으니

지금이야 이민도 갈 수 없는 몸이 아니더냐.

그러니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미치자 미쳐야 산다.

 

내 처지가 가여워서 미치고, 이 국민들이 안타까워 미치고,

내 조국이 자꾸 자꾸 거꾸로 흘러가니 앞일이 걱정되어 미치겠다.

미쳐야 산다. 미칠 수밖에 없다. 미치자, 미치자, 정녕, 미쳐야 하리라.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의 탄생은 소설가 황석영 씨와 광주의 문화운동가들이 1980년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당시 30살) 씨와 그의 야학 동료 박기순(당시 21살) 씨를 추모하며 그들의 영혼결혼식을 주제로 노래극 <넋풀이-빛의 결혼식>을 만들었다. 노래극 15곡 중 마지막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노래극이 대학가를 통해 퍼지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 운동에 힘을 주는 대표곡이 됐다.

노래는 백기완 선생의 시 <묏 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에서 가사를 가져 오고 작곡은 광주지역 문화운동가 김종률 씨가 맡았다. 1980년 초 백기완 선생은 감옥에서 보안사의 군홧발 고문에 만신창이가 되어 죽음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때 입으로 새기던 '비나리(시)'가 훗날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가 된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민중가요가 아니다. 5ㆍ18을 위해 만든 '5ㆍ18 노래'다. 또 1980년대 집회· 시위 현장의 대표적 애창곡으로 민중가요의 대중화를 견인했다는 평을 받는다. 1970년대에는 주로 대중가요, 외국민요, 복음성가 등을 불렀으나 이 노래를 필두로 민중가요의 흐름이 바뀌기도 했다. 그야말로 민중과 함께 시대를 헤쳐 온 역사성을 가진 노래인 것이다.

 

 

프랑스 국가 : 마르세유 군대의 노래

 

라 마르세예즈

- 1절 -

나가자 조국의 아들딸들아영광이 날이 왔다!

압제에 맞서피 묻은 깃발을 올려라 (두 번)

들판에서도 들리는가.

저 포악한 병사들의 외침이

그들이 여기까지 닥쳐와

당신의 자식과 아내를 죽이려 한다.

 

- 후렴 -

무장하라, 시민들이여

무리를 지어라행진하자,

행진하자 !적들의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을 적실 때까지!

 

- 2절 -

저 노예, 반역자, 공모자의 무리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끔찍한 족쇄와 오래도록 준비한 이 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 프랑스인에게, 아 ! 이 무슨 모욕인가

끓어오르는 분노인가

바로 우리가 노예제를 과거로

되돌릴 용기를 가졌다!

 

- 3절 -

뭐라고! 외국의 무리들

우리 땅을 지배한단 말인가!

뭐라고! 저 돈에 팔린 용병들이

우리의 자랑스런 전사들을 쳐부순단 말인가! (두 번)

신이시여! 결박당한 우리 손

속박하의 우리 전선이 쓰러진단 말인가!

비열한 폭군이 우리 운명의

주인이 된단 말인가!

 

- 4절 -

각오하라, 압제자와 너희 배신자여

모든 이의 치욕이여

각오하라! 너희들의 반역은

결국 대가를 치르리라! (두 번)

모두가 전사가 되어 너희들을 물리치고

우리 젊은 영웅들이 쓰러지면

이 땅은 새로운 영웅들을 태어나게 하리니

모두가 너희와 싸울 준비가 되었다!

 

- 5절 -

프랑스인이여, 고결한 전사여

주먹을 날리고 또 참아라!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상대로 무장한

이 슬픈 희생자들을 용서하라 (두 번)

하지만 저 잔인한 폭군들은

하지만 저 부이예의 공모자들은

가차 없이 자신의 어머니들의

가슴을 찢어놓은 저 모든 호랑이들은!

 

- 6절 -

우리는 그 길로 들어가리라

우리의 선열들은 더 이상 없는 그때

거기서 그들의 흔적과

용기의 자취를 발견하리라 (두 번)

그들을 대신해 살아남기보다는

죽음을 함께하고자 하는

우리는 숭고한 자존심을 지키리라

그들의 복수를 이루고 그들을 따르리라

 

- 7절 -

거룩한 조국애여

복수를 위한 우리의 팔을 이끌고 들어 올려라

자유여 귀중한 자유여

너의 수호자와 함께 싸워라! (두 번)

우리의 깃발 아래로 승리가

너의 강인한 노래에 발맞추고

쓰러져가는 네 적이

 너의 승리와 우리의 영광을 보기를!

 

프랑스혁명 당시 1792년 4월 24일 밤 혁명군 공병대 장교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이 작곡했다.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한 후 스트라스부르(루제 드 릴도 이곳에 주둔했음) 시장 P. F. 디트리히가 프랑스군이 부를 행진곡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자 루제 드 릴이 작곡한 곡이 바로 〈라 마르세예즈〉이다. 원래 제목은 〈라인군의 군가 였는데, 마르세유 출신 의용군들이 즐겨 불렀기 때문에 〈라 마르세예즈〉로 통하게 되었다.

 

 

 

미국 국가 : 별이 빛나는 깃발

 

성조기

 

- 1절 -

오, 그대는 보이는가, 이른 새벽 여명 사이로

어제 황혼의 미광 속에서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환호했던,

널찍한 띠와 빛나는 별들이 새겨진 저 깃발이, 치열한 전투 중에서도

우리가 사수한 성벽 위에서 당당히 나부끼고 있는 것이.

포탄의 붉은 섬광과 창공에서 작렬하는 폭탄이

밤새 우리의 깃발이 휘날린 증거라.

오, 성조기는 지금도 휘날리고 있는가.

자유의 땅과 용자들의 고향에서!

 

- 2절 -

저 깊은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해안,

오만한 적군도 공포의 적막 속에서 숨어 있는 그 곳에서

드높이 치솟은 절벽 위로 변덕스런 산들바람 따라

반쯤 가려졌다 반쯤 드러나 보이는 저것이 무엇이냐?

이제 아침의 첫 광휘를 받아

충만한 영광에 반사되어 강물 위로 빛나는,

그것은 바로 성조기. 오! 영원토록 휘날리소서.

자유의 땅과 용자들의 고향에서!

 

- 3절 -

그토록 자신만만 호언장담했던 그 무리는 어디 있느뇨?

그리고 전쟁의 파괴와 전투의 혼란 속에서

우리에게 집이고 조국이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리라

그들의 피로 더러운 자신의 발자국의 떼를 씻어냈도다.

그 어떤 피난처도 그 용병들과 노예들을

패주의 공포와 무덤의 암흑으로부터 구해주지 못했고,

성조기는 승리하게 휘날리누나.

자유의 땅과 용자들의 고향에서!

 

- 4절 -

오! 그리하여 자유로운 사람들이

사랑하는 그들의 고향과 전쟁 폐허 사이에서 언제나 일어서리라.

승리와 평화로 축복을 받으며 하늘이 구한 이 땅이

우리의 나라를 만들고 지켜 준 신의 권능을 찬양하게 하소서.

대의가 정당하면 우리는 필승할 것이오,

우리의 좌우명은 "하느님 안에 우리의 믿음이".

그리고 성조기는 승리 차게 휘날리리라

자유의 땅과 용자들의 고향에서!

 

별이 빛나는 깃발, 이곡은 법률가인 프랜시스 스콧 키가 작사하였고, 곡조는 영국에서 술을 마실 때 부르는 '천국의 아나크레온에게' 라는 노래를 사용한다. 프랜시스 스콧 키의 시는 그 후 '맥헨리 요새의 방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판되었고 그 해에 이 노래가 낱장 악보로 다시 출판되면서 제목도 바뀌었다. 이 곡은 1889년에 해군으로부터 인정받았고, 1916년에 백악관으로부터 인정받았으며 1931년에 미국의 공식 국가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