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아두기

또 한 편의 시를 마음에 담는다.

心田農夫 2010. 6. 10. 17:13

          교산시비

 

남쪽으로 두 개의 창문이 있는 손바닥만 한 방 안

한낮의 햇볕 내려 쪼이니 맑고도 따뜻하다.

집에 벽은 있으나 책만 그득하고

낡은 베잠방이 하나 거친 이 몸

예전 술심부름하던 선비와 짝이 되었네.

차 반 사발 마시고 향 한가치 피워두고

벼슬 버리고 묻혀 살며 천지 고금을 마음대로 넘나든다.

사람들은 누추한 방에서 어떻게 사나 하지만

내 둘러보니 신선 사는 곳이 바로 여기로다

마음과 몸 편안한데 누가 더럽다 하는가.

참으로 더러운 것은 몸과 명예가 썩어 버린 것

옛 현인도 지게문을 쑥대로 엮어 살았고

옛 시인도 떼담집에서 살았다네.

군자가 사는 곳을 어찌 누추하다 하는가.

                               「오두막 편지」에서 인용

 

 

간혹 가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옛날에 태어났다면 선비답게 살았을까?

특히 옛 시대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해보고는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옛 시절에 선비를 지금 시대는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

나름대로 이렇게 비교를 해본다.

옛 시절의 선비라고 불렸던 사람들,

지금의 우리들이 학자라고 부르는 이들과 같은 것은 아닐까?

 

소학에 나오는 선비에 대해 일부 옮겨보면

 “선비란 한평생 학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선비는 타고난 신분이 아니라 학문과 수련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비는 독서인이요, 학자인 것이다.

선비가 배우는 학문의 범위는 인간의 일상생활 통해 지식의 양을

쌓은 것이 아니라 도리를 확인 하고 실천하는 인격적 성취에 목표를 둔다.”

라고 되어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요즈음의 학자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선비란 어원을 찾아보니

한국말에 ‘선비는 어질고 학식 있는 사람’을 말한다.

선비들은 선비의 인격적 조건으로 생명에 대한 욕심도 초원할 만큼의

무소유의 덕을 요구했다.

 

공자는 이에 대해 말하기를 “뜻 있는 사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하여

어진 덕을 해치지 않고 목숨을 버려서라도 어진 덕을 이룬다.”라고 하였다.

 

장자도 “사가 위태로움을 당해서는 생명을 바치고, 이익을 얻게 될 때에는

의로움을 생각한다.” 강조했다

 

맹자는일정한 생업이 없어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은

사만이 할 수 있다.”라고 하여 사의 인격적 조건으로 지조를 꼽았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

정말 쉽지만은 않겠구나 생각되는 글들이다.

그러면서도 선비답게 살고 싶어지는 것은 왜 일까?

 

오늘도 글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을 가져 보았다.

위의 시는 교산(蛟山) 허균선생의 ‘교산시비’에 있는 시다.

교산시비는 허균선생의 ‘누실명(陋室銘)’이란 글에서

몇 구절 뽑아 옮겨 놓았다고 한다.

 

“벽은 있으나 책만 그득하고”

“낡은 베잠방이 하나 걸친 이 몸”

“천지고금을 마음대로 넘나든다.”

“마음과 몸 편안한데 누가 더럽다 하는가.”

“참으로 더러운 것은 몸과 명예가 썩어 버린 것”

 

선비의 인품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글이다.

글에서 훌륭한 선비의 기개를 엿볼수 있지 않은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한번 이승에 왔다면,

한번 반드시 저승으로 가야 하는 우리 인생이 아니던가.

강물이 흘러가듯 잠시 거쳐 가는 이승이요

구름처럼 잠시 뭉쳐다가 사라져 없어지듯 한 인생인데

가야할 때 하나라도 가져 갈 수없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마음을 빼앗기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명품아파트에, 명품자동차에,

명품시계에, 명품 옷에, 명품구두에, 명품가방에

온 몸을 감싸고 휘둘려 사는 것도 모자라는 지

거기다 몸 까지도 명품으로 만들려고 하는 지

세월의 흔적인 주름을 보톡스 주사로 없애고자 하고

성형수술로 이곳저곳을 뜯어고치며 살아가는 인생들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왠지 명품이라는 것들에 대해서는 부러움이 없는데,

“벽에 책이 그득하다”는 것에는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마 나에게 조금은, 아주 조금은 선비의 기질(?) 이라도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오늘 또 한 편의 시를 마음에 담는다.

위의 교산 허균선생의 시를,

조지훈님의 산중문답과 중국의 대시인 이백의 산중문답과 함께

마음에 담고 늘 되새겨 보면서 옛 선비의 도를 배우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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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중문답(山中問答)

                          이 백

 

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물어봐도

대답 없이 빙그레 웃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복숭아꽃 흐르는 물 따라 묘연히 떠나가니

인간세상이 아니 별천지에 있다네.

 

 

      산중문답(山中問答)

                         조 지 훈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에 호미 씻고 돌아오는

그 맛을 자네 아능가”

 

“마당 가 멍석자리 쌉쌀개도 같이 앉아

저녁을 먹네

아무데나 누워서 드렁드렁 코를 골다가

심심하면 퉁소나 한가락 부는

이런 맛을 자네가 아능가“

 

“구름 속에 들어가 아내랑 밭을 매면

늙은 애내도 이뻐 뵈내

비온 뒤 앞개울 고기

아이들 데리고 낚는 맛을

자네 太古적 살림이라꼬 웃을라능가”

 

“큰일 한다고 고장 버리고 떠나간 사람

잘 되어 오는 놈 하나 없데

소원이 뭐가 있능고

해마다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라고

비는 것뿐이제“

 

“마음 편케 살 수 있도록

그 사람들 나라일이나 잘하라꼬 하게

내사 다른 소원 아무것도 없네

자네 이 마음을 아능가”

 

老人은 눈을 감고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따뤄 주신다.

“예 이 맛은 알 만 합니더”

靑山 白雲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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