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그대는 그 가치를 알고나 있는가?

心田農夫 2010. 9. 6. 17:10

지닌 토요일 이었다.

요즈음 주 5일제 근무를 하는 곳이 많아서인지

토요일 아침은 평일 같으면 몇 차례의 신호가 바뀌어야

간신히 통과를 할 수 있는 사거리도 별 막힘이 없이

한 번의 신호로 통과하여 출근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지 토요일에는

점포를 찾는 손님들도 평일보다는 적게 오신다.

 

IMF이후 혼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손님이 없으면 책을 보는 것이 일상이다.

지난 토요일에도 책을 보고 있는데,

 

연등을 앞에 들고 스님 한 분이 들어오셨다.

스님 들어오셔서는 합장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며

“불사를 하는데 시주를 하시고 만복을 받으십시오.”하며

연등을 앞으로 내미신다. 연등은 안에 촛불은 없고 비어있었는데

아마 그것을 내미는 것을 보아 시주함으로 가지고 다니시는 모양이다.

 

그래 “스님 죄송합니다.”하고 말을 하였더니

“천 원짜리 하나라도 좋으니 시주를 하십시오.

불사에 시주하면 사업도 잘 됩니다.”하신다.

 

그래서 다시 “스님 죄송합니다.” 했더니

다시 스님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라도 시주 하십시오.

오백 원이 없다고 죽고 사는 것도 아닌데,”하기에

 

속으로 참으로 끈질기신 스님이시네,

생각을 하면서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스님 말씀처럼 오백 원짜리 동전이 없다고

내가 죽고 못 사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오백 원짜리 동전하나 시주 안한다고

스님께서 불사를 못 한다는 것도 딱하지 않으십니까.” 라고 말하려다

 

참으면서“스님, 스님이 가는 길과 제가 가가는 길이 달라서입니다.”했더니

그제야 인상을 쓰시며 한 마디 말도 없이 돌아서 나가신다.

 

아무리 경기가 안 좋아 점포운영에 어려움이 있다한들

스님의 말씀처럼 천원이나 오백 원이 없어서

내가 시주를 못하는 것은 아니고

스님의 말씀처럼 오백 원짜리 동전 한 닢 시주했다고

죽을 것도 아니요, 사는데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간간히 승복을 입고 점포를 찾아와 시주를 해달라는 스님들이 있다.

그런 분들에게 약간의 돈을 시주하라고 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나는 그 분들이 참으로 도량에서 수행을 하는 스님인지 알 수가 없어서이다.

 

즉 사찰에 소속된 스님인지, 승복을 입고 승려인양 돈 벌이를 하는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된다 이 말이다.

 

그 스님처럼 가가호호 방문을 하여 걸식을 하는 것을 탁발이라고 하는데

이 탁발은 부처님 당시부터 행하여 졌는데, 이는 스님들이 도를 닦으면서

음식을 걸식하여 공양했던 것으로 탁발도 하나의 수행이었다 한다.

경문을 외우며 가가호호 방문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집과 아만을 없애고 음식을 주는 이들은 보시의 공덕이 있다하여

부처님 당시부터 행하여 졌었고 수행의 하나로 보았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조계종에서는 탁발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불교에도 여러 종파가 있고 그 종파에서 아직 탁발을 하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요즈음 절을 찾는 신도들의 시주만으로도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공양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불사라도 그렇다.

 

그래서 입적하신 법정스님께서는 늘

내가 중노릇하면서 빚만 많이 졌다.”

 

“저 자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시은을 너무 많이 지면서

살아왔구나. 내가 세상을 위해서 한 일보다 받은 것이 더 많구나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이것을 기억하고 은혜를 갚는 일에

좀 더 노력해야 되겠다구나.”

 

“시주의 은혜에 의존해 살아가는 승려로서

세상에 조금의 역할이라도 하기 위함,”이라고 하시면서

 

어떠한 일기에도 개의치 않으시고 강원도 산골을 떠나

먼 곳에 있는 길상사까지 오셔서 법회를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법회에서 하셨던 말씀을 담아 펴낸 법문집에 이런 글이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수행자의 걸식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스스로 일하지 않고 거저먹는 것을 악덕으로 여깁니다. 여기에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가 있습니다. 소승불교에서는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지킵니다. 부처님 말씀뿐 아니라 사회적인 배경 자체가 전통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부처님의 말씀보다 뜻을 받들어서 수행자들도 생산해서 먹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자기가 먹을 식량은 자급해야 한다는 취지로 바뀝니다. 대단히 혁명적인 발상입니다.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극복해보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한 걸음 발전한 것입니다. 이것이 대승불교입니다.

                                                                                법정의 「일기일회」중에서

 

이처럼 이제는 탁발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아직 탁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 같이 승복을 입고 있다.

그들이 도량에서 참선을 하고 수행을 하는 스님인지 의구심이 가는 것이다.

 

진정 도량에서 수행하는 스님이라면

탁발을 하면서 중생이 시주를 안하다하여도 얼굴을 붉히는 태도는

깨달음을 위해 정진 수행하는 스님의 참다운 모습이 아니지 않는가?

 

한 푼의 시주라도 하면 두 손 합장을 하며 만복을 받으라고 하면서도

시주를 하지 않으면 얼굴을 찡그리면서 오백 원짜리 하나 시주했다고

죽고 못 사느냐 말하는 사람이 과연 수행을 하는 스님일까?

 

천 원짜리 하나, 오백 원짜리 하나 라,

그 천 원짜리, 그 오백 원짜리 하나가

얼마나 큰돈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무슨 수행을 한다고

얼굴을 찡그리고 돌아 나가는 스님에게 속말로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스님, 하루에 일 달라(원화 1000~1200원)가 없어

세계인구중 11억 명이(2001년 현재) 굶주리고 있고

그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어린이가 수도 없다는 것을 알기나 하고

천 원짜리 한 장, 오백 원짜리 동전 한 닢이라고 하는 것이요?”

 

한 끼의 식사 400원이 없어 굶고, 하루 1200원이 없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이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 사는

우리와 똑같은 모습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는 것이요

 

천 원짜리, 오백 원짜리 하나라니,

천원의 가치, 오백 원의 가치를 모르면서

무슨 탁발을 한다고 다니시기는 다닌다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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