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하여 생각하기

한글날 오후에 우연히 들은 내용

心田農夫 2010. 10. 9. 17:14

 

왠지 식욕이 없어 점심때를 보내고 3시가 되어서야 점심을 먹는데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라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아나운서의 이야기에는 167개의 글(?)인가 하는 조사대상의 글 수와 조사한 년도와 그 글을 조사한 나라와 대학교, 교수의 이름도 나오는데 순간 지나가는 소리라 다 기억을 못하고 그 내용의 뜻만 옮겨 보면 대충 이러한 내용의 말이 이었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언젠가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글들을 모아서 어느 글이 제일 우수한 글인가를 평가하였단다, 평가는 과학적인 체계로 구성되어있나. 실지로 쓰기 사용하기가 편한가, 그리고 아름다운 글인가? 그렇게 해서 점수를 매긴 결과 한글이 제일 우수한 글로 선정이 되었단다.

 

그 조사를 한 옥스퍼드대학교의 교수는 매년 한글날이 오면 그 날은 수업을 안 하고 한국음식을 만들어 학생들과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에 대하여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한글날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낸다는 것이다. 

 

이 년 전인가 나의 점포에 찾아온 5명의 학생들이 서로 하는 이야기를 옆에 앉아서 들었다. “야, 옛날에는 한글날에 쉬었다는데, 한글날이 무슨 날이기에 쉬었지?” 하는 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새롭게 생각이 난다. 아래 글도 어느 비오는 토요일 날 문득 그 학생이 한말이 기억이 나서 적었던 글이다. 그 때 적었던 글을 마침 오늘이 한글날이라 옮겨본다.

 

 

그 아픔, 잊으면 안 되지.

 

내 학교 다닐 때 국어시간에 “마지막 수업”이란 제목이 실린 단락을 수업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다. “마지막 수업”의 내용은 프랑스의 지방학교에서 있었던 일로 독일 베를린으로부터 앞으로는 프랑스어로 수업을 못하게 하고 독일어로 수업을 하라는 명령에 의해 마지막으로 프랑스어로 수업을 한다는 내용이다.

 

“여러분 이 시간이 내가 여러분을 가르칠 수 있는 마지막 수업입니다. 알자스와 로렌 지방의 학교에서는 이제 독일어만 가르치라는 명령이 베를린으로부터 왔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을 부디 잘 들어 주세요.”

 

‘마지막 수업’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예복을 입으시고 교단에 올라선 아벨 선생님이 학생들과 교실 뒤에 서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자신들의 국어 프랑스어로 받는 ‘마지막 수업’매번 있었던 수업이고 앞으로도 당연히 그러한 수업을 받을 것 이라고 생각했으니, 그것이 그렇게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를 그들은 몰랐다. 아벨선생님은 제대로 암송을 못하는 주인공인 프란츠에게

 

프란츠, 너를 야단치진 않겠다. 이미 반성하고 있을 테니까, 우리는 시간이 많으니까 내일 하지 뭐, 하고는 미루길 좋아한다. 하지만 그건 너만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 모두 잘못한 것이 많으니까“ 하고는

 

프랑스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명확하며 가장 확실한 언어라고 강조 하였다.그러니 우리들은 프랑스어를 끝까지 지켜서 결코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일제의 강점기 시절 우리에게도 그러한 일이 있었다. 우리의 국어로 교육을 받을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씨알 함석헌 평전」을 보면

 

“함석헌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조선역사를 ‘조선어’로 가르치고 있었다. 자연히 학생들과 학교는 함석헌의 역사 수업에 대해서 긴장감과 경계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의 수업 도중에 갑자기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도(道) 시학관이 교장선생과 함께 교실로 들이 닥쳤다. 예고 없이 급습하여 선생이 우리말로 강의하는 현장을 적발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 중략-------

 

그러나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선생께서는 학교를 떠나시었다. 잘은 모르지만 이 사건과 선생의 사임과는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졌다. 그래서 그 수업시간은 실질적으로 선생의 ‘마지막 수업’으로 나의 기억에 남아 있다.

 

                           -------- 중략 -------

 

그래서 더욱 그 ‘마지막 수업’은 오래 동안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 때 3학년 학생이었던 저명한 한국사학자 이기백의 이야기다.

 

위의 내용은 함석헌선생이 오산학교 재직 중에 있을 때, 일본어로 수업을 할 것을 지시한 총독부 학무국의 지시를 듣지 않고 우리말과 우리의 글로 수업을 하다가 결국을 학교를 떠나는 계기가 되었던 내용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처럼 어렵게 지켜왔던 우리의 말이요 우리의 글이요, 또한 세계의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들이 한글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이어서 어떠한 것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우수한 글이다. 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 그것이 한글인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돌아가는 판을 보면 아직도 식민지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고는 한다. 당당한 주권국인 대한민국에서 과학적이요, 아름다운 우리의 한글을 도외시하고 외국어를 더 우선시하는 망국적인 일이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행동하는 추태를 보고 있으려니 왠지 화가 나고 혈압이 올라간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 며칠 전에 구입한 시집에 실려 있는 시를 보니 나처럼 현 세태를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는 마음에 담아 두였던 것을 추적추적 비가 오는 주말에 글로 적어보게 되었다

 

 

식민지의 국어시간

 

                       문 병 란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 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 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신사참배를 가던 날

신작로 위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가,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고

일본 놈에게 붙어야 잘 산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조상도 조국도 몰랐던 우리,

말도 글도 성까지고 죄다 빼앗겼던 우리,

히노마루 앞에서

알아들을 수없는 일본말 앞에서

조센징의 새끼는 항상 기타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조선말을 쓴 날

호되게 뺨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뺨을 때린 하야시 센세이는

왜 나더러 일본 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혀가 꼬부라지고 헛김이 새는 나의 발음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국어선생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간다는 한글,

나는 배고픈 언문 선생이 되었다.

 

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

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는데

윤동주를 외우며 이육사를 외우며

나는 또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어릴 적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일본말,

그날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는데

다시 내 곁에 앉아 있는 일본어 선생,

내 곁에 뽐내고 앉아 있는 영어 선생,

어찌하여 나는 좀 부끄러워야 하는가.

 

누군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데

까아만 칠판에 써놓은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글자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 슬픈 국어 시간이여.

 

 

〇 히노마루 : 일장기를 가리키는 일본말

〇 기타나이 : ‘더러운 놈’이라는 뜻의 일본말

〇 센세이 ; ‘선생님’이라는 뜻의 일본말

 

 

글로벌시대라고 하는 요즈음 살아가면서 필요한 외국의 말과 글을 배우고 익혀 써야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리라. 그러나 우리의 한글을 낮게 보고 언문이라는 등, 한글로는 모든 것을 제대로 표현을 할 수 없다는 주장, 또 한글을 이상하게 변형해서 그것이 앞서나가는 신새대인 것처럼 사용하는 것 등

 

이제는 제발 그러지 말자. 프랑스인이면서 프랑스어를 못 쓰는 아픔 한민족이면서 한글로 한국의 역사를 못 가르치던 함석헌선생님의 가슴 아파 던 그 마음을 잊지 말자.

 

영어, 그래 배우자. 암 배우고 익혀야 산다. 그래야 세계 속에 한국으로, 한국인으로 우뚝 설 수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의 말 우리의 글부터 가르치고 배우고 나서 영어를 배워도 늦지 않으리라는 것이 저명한 학자들의 충고인 것도 알아야 하리라.

 

우리의 국어시간을, 우리의 국어 선생님을, 더 이상 눈물 짖는 슬픈 선생님, 슬픈 국어시간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랬다가는 머지않아 후회를 하며 ‘마지막 수업’을 또 받아야하는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자.

 

 

27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