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부부의 날 떠오른 그 어느 날 오후

心田農夫 2011. 5. 21. 17:03

 

어릴 때 옛 친구로는 내 곁에 늙은 아내 한 사람 남아 있다. 글도 지을 줄 모른단. 음악 미술은 더욱이 모른다. 다만 된장찌개를 내 밥상 위에 끊여 놓아 줄 줄 아는 것밖에는 없다. 그러나 단지 나의 오랜 하나 남은 옛날 친구다.

 

                                               시인 박 종 화

 

 

 

 

달력을 볼일이 있어 보노라니, 큼직한 21일이라는 숫자 밑에 작은 글씨로 “小滿 ㆍ夫婦의 날”이라고 적혀있다. “아, 오늘이 부부의 날이구나.” 혼자 소리를 하고는 부부의 날이라 그럼 어찌 보낸다. 그 방법을 모르겠다. 오늘은 조금 일찍이 퇴근을 해 외식을 할까? 아니야 안한다고 할 거야. 꽃이나 한 다발 사다 줘. 아냐 그것도 또 사왔다고 뭐라고 할 것이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한집에 더불어 오래 살다보니 보지 않아도 그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외식을 하자면 “집에 쌀 있겠다. 반찬 있겠다. 밥해먹으며 되지 무슨 외식”할 테고, 꽃바구니 사들고 들어가면 지금은 보기 좋아도 시들면 마음까지 슬퍼지는 꽃은 왜 사와”라고 말할 것이다. 아내가 할 말과 표정까지, 안 보고 안 들어도 보이는 것 같고 들리는 같기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부부는 닮아 간다고 했던가? 그래 사노라니 닮아가는 것 같다. 젊은 시절 가난하게 살았던 나인지라 절약이 몸에 배여 있는 나를 만나서 열심히 절약에 절약을 하며 살아가는 아내다.

 

자신의 말대로 처녀 때는 이름 있는 옷에, 이름 있는 신발에, 이름 있는 핸드백을 지녔다는 아내. 이제는 자신의 말대로 시장 패션 전문가라나, 돈 이삼만 원짜리 구두에, 오천 원짜리 티에, 만 오천에 봄 점퍼 사고는 싸게 싸다고 좋아하는 아내가 되었다.

 

농에서 무엇인가 찾는다고 찾다가 이제는 입지 못하게 된 농속에 다소곳이 걸려있는 처녀 때의 정장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뒤에서 몰래 보았을 때, 자신의 무능을 깨달았고 참으로 안타까웠던 심정이 있었다.

 

남편 잘못 만난 탓이 아니런가, 그렇게 고생을 시키면서 거기다가 아버지를 모시고 왔으면 한다고 말 했을 때, “꼭 모셔야 하느냐”고 되묻기에 속속들이 사정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어서”하였더니 “그럼 당신 알아서 하세요.”단 한마디에 15년 아니 정확히 16년을 모시고 살았다.

 

막내며느리인 내가 왜 형님들 두 분이나 있는데 모셔야하느냐는 말을 할만도 한데 단 한마디도 없었다. 누가 시어른 모시고 사는 효부라 하면 우리는 모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직장 다니느라고 잘 해드리지 못하는데 그런 것은 모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던 아내

 

아버지가 식사를 못할 때면 떡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떡집 드나들었던 아내다. 어느 휴일 날 점심 진지를 몇 술 뜨시다 입맛 없다며 수저를 놓으시는 아버지를 위해 아이들과 내가 식사를 마치자 설거지도 미루어 두고는 나가기에 어디에 갔는가. 했더니

 

아버지 좋아하시는 증편 비롯하여 몇 가지 떡을 사가지고 와서 쟁반에 음료와 함께 담아 아버지 방으로 가져다 드리고는 설거지를 서두러 마치고 “누구라도 날 깨우지 마” 한마디 하고는 침대에 누워 곧 바로 깊은 낮잠에 빠져 든 아내의 얼굴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보았던 그 어느 날이 생각이 나는 토요일 오후다.

 

 

 

 

 

아내

 

                  碧 石

 

누구든 나 건드리지 마

한마디 뒤로하고

둥그런 얼굴 달님 되어

두둥실 떠오른다.

 

구십 가까운 시부(媤父)

병상머리 투정에

심신(心身)이 파김치 되었나 보다

 

막내라 싫다한들

나무랄 이 없다마는

못난 남편 만나 죄 값에

 

딸기다, 귤이다. 배, 등

믹스 돌리고 돌려 드시게 하고

미음이다, 스프다 정성 담아

끓여내어 요모조모 챙겨드리네

 

떡 좋아하는 시부 드리려

명절도 아닌데

송편 절편 증편 사러

떡집 문지방 넘나드는데,

 

나이 들어 연로(年老)하면

어린아이 된다 하더니만

막내며느리 시름 깊어갈수록

홀 시부 어리광 늘어만 가네.

 

                          2007년 3월 10일

 

 

 

 

 

맷돌

 

            碧 石

 

마술에 돌

빙글빙글 돌리며

콩 한술 넣으니

하얀 순두부 되어 나오고

콩 두술 넣으니

사각두부 되어 나오네.

 

마술에 돌

빙글빙글 돌리며

녹두 한술 넣으니

하얀 비지 되어 나오고

녹두 두술 넣으니

둥그런 빈대떡 되어 나오네.

 

마술에 둘

빙글빙글 돌리며

지난 시간 넣으면

웃음 짖는 엄마 얼굴 보일까

흐른 세월 넣으면

그리운 엄마모습 보일까?

 

마술에 돌

빙글빙글 돌리며

지난시간 넣어도

웃음 지는 엄마 얼굴 아니 보이고

흐른 세월 넣어도

그리운 엄마모습 찾을 수 없네.

 

               어머니를 생각하며,  2006년 8월 22일

 

 

 

‘아내’란 글을 찾다가 어머니를 생각하면 썼던 글 ‘맷돌’이 눈에 띠어서 같이 올려본다. 어머니도 나의 아버지의 아내 이었기에, 두 분이 함께 계신다면 두 분에게 대접한다고 외식하자하면 아내도 두말없이 그러자고 했을 것이다.

 

주말이며, 부부의 날. 어이 보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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