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국화(國花) 무궁화 꽃을 보면서

心田農夫 2011. 8. 15. 14:31

 

 

 

 

 

 

충남 공주의 마곡사(麻谷寺)는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큰스님 설법을 듣기 위해 몰려든 사람이 마치 삼(麻)밭에 삼이 선 것처럼 계곡을 가득 메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대광보전은 마곡사를 대표하는 건물이며 현판글씨는 조선 후기 문인화가인 강세화의 작품이다. 대광보전의 정면의 향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명성황후가 일본의 낭인에게 시해 당했을 때 청년 김구는 분개한 나머지 그 이듬해인 1809년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마곡사로 숨어들었다. 당시 그에게 심산유곡의 산사는 피난처로서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백범은 용담 화상에게 머리를 깎고 ‘원종’이란 법명을 받았다. 마곡사에서 한동안 승려생활을 하던 그는 해주의 수양산 신흥사로 잠시 옮겼다가 1년 반 만에 승려생활을 청산하고 환속한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러 일제가 물러간 1946년 4월, 다시 마곡사를 찾은 백범은 감회가 새로웠다. 용담스님께 불경을 배우던 방에서 하룻밤을 지냈으며, 스님들은 그를 위해 밤새워 불공을 드렸다. 백범은 그에 대한 답례로 무궁화와 향나무를 각기 한 그루씩 대광보전 앞뜰에 심었다.

 

그때 백범의 눈길은 잠깐 대광보전 기둥에 걸린 주련을 스쳤다. 주련에는 “속세의 일을 돌아보니 오히려 꿈속의 일만 같도다(去來觀世間 猶如夢中事)”라고 씌여 있었다. 백범은 나무를 다 심고 추억이 서린 마곡사를 떠났다. 나이 어린 향나무의 향이 떠나는 백범의 뒤를 한참이나 쫓아 나왔다.

        도진순의 옮김「쉽게 읽는「백범일지」를 인용한

                            강판권 지음 「나무열전」에서 재인용

 

 

 

 

 

일요일인 어제도 아침을 먹고 집사람과 집근처에 있는 창포 뒤 산으로 산책을 갔다. 얼린 물 두병과 얼린 물을 녹여 먹을 물 한 병을 작은 가방에 넣고 따가운 햇볕을 가리기위해 모자를 쓰고 등산화를 싣고 집을 나섰다.

 

매번 가는 길이지만 전에는 그냥 스쳐지나 갈 뿐 이었지 눈길을 주지 않았었는데, 요즈음 유독 눈에 띠는 나무가 있다. 무궁화나무다, 한참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어서 눈길을 주게 되고 오면서 벌써 몇 차례 무궁화 꽃을 사진기에 담아 오고는 했다.

 

꽃이 피기 전까지는 그 곳에 무궁화나무가 있는 줄을 몰랐다. 꽃이 피고나 서야 꽃을 보고 “어, 이곳에 무궁화나무가 있었네.”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그것이 벌써 한 한 달 전쯤이었지 싶다.

 

어제도 산에서 내려와 그곳을 지나면서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서 무궁화 꽃을 사진기에 담고 있으니 집사람 “또 찍어요.”한다.” “저번에 흰 꽃이 활짝 핀 것이 없어서 못 담아서”그곳에는 보통 무궁화 하면 생각하는 색의 무궁화 꽃과 더불어 꽃 색갈이 하이얀 색의 무궁화나무가 나란히 서있다. 무궁화 꽃을 사진기에 담고 돌아서 오면서 벚꽃 축제에 대해서 집사람과 이야기 했다.

 

봄에 피는 벚나무의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축제를 열어가면서 꽃구경을 하고는 한다. 진해의 ‘군향제’의 진해 벚꽃 축제, 서울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 축제, 그리고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도 매년 벚꽃축제를 열고는 한다. 그 축제기간에는 경주를 드나드는 모든 길들이 차들로 꽉 차 주차장을 방부케 한다.

 

이렇게 일본 국화(國花)인 벚꽃 축제는 참으로 많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우리나라 국화(國花)인 무궁화 꽃 축제는 없다.(내가 모르고 있기에 없다, 라고 적는다.) 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축제를 열어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인데, 어느 나라 국화이면 어떠하리. 꽃은 꽃일 뿐이 아니던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요즈음 가로수를 벚꽃으로 심고 있는 현실에서 어디서나 봄이면 벚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나무는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자주 대할 수 있었던 나팔꽃, 분꽃, 해바라기 등 이제는 쉽게 볼 수 없게 된 것처럼 무궁화 꽃도 점점 더 보기 어려워지는 것을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있다.

 

오늘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 지배를 벗어나 독립한 지 66주년 기념일인 광복절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생명조차 초개 같이 여기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였던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어서 오늘 우리는 편하게 살고 있는 것인데, 언제가 광복절을 ‘건국일’로 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친일 자체는 원론적으로 범죄가 아니다. 오늘날의 친중이나 친미와 마찬가지로 대외 관계에 대한 합리적 판단에 따른 정치적 태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친일이든 친미든 친중이든 정치적 태도를 빙자하여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자기가 속한 사회를 배신하는 것은 시회의 안정성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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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진영에서 8ㆍ15를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 역사에서 1945년8월15일보다 1948년8월15일이 더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일본의 식민 통치를 근대화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뉴라이트에게는 일본 패전으로 이뤄진 민족의 광복이 반가운 일이 아니라 안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광복당시에 일본의 패전을 슬퍼한 한국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에 속한 채 수십 년을 지낸 시점에서 더러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그렇다 쳐도, 대한민국에 속한 채 수십 년을 지낸 시점에서 그런 사람들을 떼로 보게 되는 것은 참 뜻밖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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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통지로부터의 해방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민족 분단을 굳힌 대한민국 건국을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찬양할 수 있다니……. 도대체 민족에 대해 어떤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란 말인가?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뉴라이트 비판」중에서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폐허가 되었을 때 백의민족인 우리의 착한 백성들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주는데 일본의 장관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지, “ 이곳저곳에서 도와준다고 하는데 정신없다. 한 창구를 이용해 달라.”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그들은 역사를 왜곡한 역사교과서를 검인정하여 통과 시켜다. 그런데도 우리의 착한, 아니 그냥 착한 것이 아닌 천사처럼 착한 대한의 백성들은 아주 감동적인 말“역사 왜곡은 왜곡이고, 독도 문제는 독도 문제지, 이일과 연관시켜서는 안 된다. 이웃이 어려울 때 우리가 도와야 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도와야 한다고 했었지,

 

그러던 그 사람들 우리의 동포인 이북의 많은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유니세프의 발표에 양곡을 보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이야기에는 “안 된다. 양곡을 보내면 군량미로 쓰이고,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쓰이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라고 단호히 거절했다지,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이라는 이론,” 그 이론을 일본에게는 적용하면서도, 왜? 우리형제요 동포인 이북에는 그 이론을 적용하면 안 되는 것인지, 알쏭달쏭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광복절 아침에 출근을 하여 어제 찍은 하얀 무궁화를 보면서, 몇 년 전에 ‘무궁화를 사랑하는 모임’(단체명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기억에 남아있는 명을 쓴다.)이란 단체에서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를 사랑하자며, 여러 해 동안 광복절이 다가오면 장소를 지정해주고 오면 무궁화 묘목을 무료로 나누어 준다고 방송을 하였던 것을 기억하는데 최근에는 들어 보지를 못 했다.

 

어느 해인지 한번은 방송을 듣고 출근도 늦춘 채 묘목을 얻을까 해서 갔다가 다 나누어 주었다고 해서 그냥 돌아 온 적이 있는데, 올해에는 그런 방송을 접하지를 못했다. 그러다보니 무궁화 꽃을 실물로 보지 못하고 사진으로 볼 수밖에 없는 때가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내년 봄에는 묘목을 구해다 화분에라도 가꾸어 보아야겠다.

 

 

<위의 사진은 일요일 창포 뒤 산 산책 길에서 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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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사진은 출근하는 길옆 단독주택에 있는 것을 점심시간에 차를 타고가서 찍었던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