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그만 잊고 말았네.

心田農夫 2011. 9. 27. 16:56

 

<시집에 있는 그림이다.>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 택 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어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러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하나 들어주신 것이었다

 

 

 

 

<시집에 있는 그림이다.>

 

 

 

어제 퇴근을 하여 들어갔더니, 주방에 음식이 준비되어있었다. 그 음식을 보는 순간 아, 오늘이 아버지 생신날인데. 또 잊고 있었구나.

 

지난 8월 31일, 음력으로 8월 3일 어머니의 생신날을 그만 깜빡하고 지나고 말았다. 아버지 생신은 잊지 말아야지 했는데, 어제 9월 26일 음력으로 8월 29일이 아버지 생신인 것을 그만 잊고 말았다.

 

그래도 집사람 잊지 않고 아버지가 평소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준비하고 내가 퇴근하여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음식을 차려놓고 딸들이 학교에서 마치고 들어오기를 기다리다 딸들이 돌아온 10시 30분에 식탁에 둘러앉자 딸들에게 “오늘이 할아버지 생신날인데 아빠는 그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음식을 준비해 놓았다.”라고 말을 했다.

 

음식을 먹으며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아빠가 이제 늙었는지 자꾸 할아버지 할머니가가 보고 싶어진다.” 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큰 딸아이의 눈에 눈물이 비친다.

 

막내가 늦게 둔 손녀를 다른 손녀들보다 더욱더 사랑했던 아버지, 용돈을 드리면 그 용돈을 모두다 손녀들을 위해 쓰시고 당신을 위해서는 쓰시지를 않았었다.

 

이런 저런 할아버지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딸들, 웃기도 하고 때론 눈물이 글썽이는 딸아이들, 딸아이들도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새삼 그리

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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