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억새밭에서 수다 보따리 풀었네

心田農夫 2011. 10. 17.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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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秋景)

 

               허 장 무

 

이쁜 것들이

조금씩 상처 입으며 살아가겠지

미운 것들을 더러는

상처 입혀가면서 말야

바람 부는 아침 저녁으로

햇살 파리한 들판

산서어나무 가지를 흔드는

바람의 전언(傳言)

눈시울 붉히며 그래도

그대만을 사랑했던가 싶게

지성으로 푸른 하늘 아래

전신으로 생을 재는

풀벌레의 보행

가을이 와 비로소 고독해진

솜다리꽃 같은

이쁜 것들이 상처 입으며

조금씩 더 아름다워지는 세상

 

 

 

 

 

 

 

 

 

 

 

 

 

 

 

 

 

동기들이 경주의 무장산에 억새를 보러 가잔다. 사각의 사무실로 매일매일 출근을 하여 사각의 얼굴을 하고 있는 컴퓨터와 마주 앉자 긴긴 시간을 무표정한 얼굴의 모니터를 보면서 보내야 하는 지루함을 떨쳐 볼까 해서 점포 문을 닫고 따라 나섰다.

 

다른 산과 달리 순탄한 등산길을 천천히 오르면서 은색머리칼 한들한들 바람결 따라 흔들면서 억새가 우리일행을 반갑게 맞아준다. 정상에 올라 단체사진 찍고는 정상에 조금 내려와 적당한 자리를 찾아 깔개를 깔고 저마다

 

배낭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내어 놓으니, 군고구마, 삶은 감자 삶은 밤에 삶은 땅콩, 족발에 훈제 고기, 거기다 음식 솜씨 좋은 어린이 집 원장님표, 특제 장아찌 두서가지에 김치 등등 내놓으니 진수성찬 못지않은 먹음직한 음식이 뚝딱 차려지네.

 

음식주위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하면서 원장님이 후원하신 휘영청 막걸리, 휘영청 동동주를 형님먼저 아우먼저 권하며 받으며, 잔을 받고 잔을 주며 그동안 꼭꼭 쌓아두었던 수다 주머니를 서로 서로 풀어 놓기 시작을 했다.

 

부원장님 아들 K대학교 면접 보고 온 이야기, 선생님 딸은 어느 대학에 원서를 냈느냐고 나에게 묻기에 답하고, 휘영청 막걸리 한잔 쭉 들이키신 영어 학원, 한자학원의 심원장님 전문대학 출강에서 술 주(酒)자 가지고 강의를 했더니 학생들 꽤 좋아했다는 이야기, 군에서 재대한 아들 취직 걱정하는 어머니의 이야기 등을 하다 보니 휘영청 상표 붙은 빈병이 쌓여가고 휘영청 막걸리도 동동주도 그만 바닥이 나고 말았네.

 

주섬주섬 자신의 그릇을 챙겨 배낭에 넣고 쓰레기는 모아 봉투에 넣고 뒤 정리 깔끔히 하고 일어서자 억새가 잘 내려가고 내년에 다시 오라는 인사를 해 준다. 억새의 인사를 등 뒤로하고는 산을 내려오면서 서로서로 주고받는 이야기 즐거운 듯 희희낙락(喜喜樂樂) 모두모두 행복한 모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