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속의 작은 정원

스스로에게 묻다. 그대는 누구신가?

心田農夫 2012. 1. 9. 18:23

 

자화상 앞에서

  

                                         碧 石

  

두 딸이 부르는

아빠라는 이름이 나의 이름인가

아내가 부르는

여보라는 이름이 나의 이름인가

직장에서

불리어지는 이름이 나의 이름인가

 

전생(前生)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았을까

내세(來世)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현세(現世)의

현재 모습으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참 나인가

 

자화상이란

그림 앞에 서서

어떤 이름이 나의 이름이고

어떤 모습이 나의 모습일까

부질없는 사념(思念)에

덧없는 상념(想念)에 잠겼다

 

우주라는

윤회(輪廻)의 쳇바퀴 속에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돌고 도는 중생이 아니던가

어떤 이름이면 어떠하고

어떤 모습이면 어떠하랴

 

 

 

                                                           박 진홍의   Self-Portrait . 2008 Oil on canvas

                          

 

포항미술관 ‘오늘의 신화전’전시를 둘러보다가 세 점의 자화상이라는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뜩 한 생각이 든다. 자화상하면 거울을 보고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줄만 알았던 고정 관념을 뒤엎는 자화상 세 점, 그 그림 앞자리에 서서 한참을 본다.

 

 

얼굴의 형태가 살포시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물감을 자유로이 칠하고 또 칠한 것만 같아 보이는 그림. 빈세트 반 고호의 자화상을, 피카소의 자화상도, 여러 종류의 자화상을 보았지만, 이러한 자화상의 그림을 대하는 것은 처음이라 약간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림을 전공한 것도 아니요. 그림에 대한 상식이 있는 것도 아닌, 그림 문외한의 눈에 비친 그림은 그랬다. 심오한 작가의 뜻을 문외한의 눈으로 보고 어찌 다 알 수가 있겠느냐만 서도 도슨트 자료를 보고서야 그제야 약간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박 진홍의   Self-Portrait . 2010 Oil on canvas

 

 

시절을 살아오면서 나의 작업의 첫 소절은 지독하리만큼의 자신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된 것이리라. 가장 근접해 있으면서도 알아내기 힘들었고 부질없음을 미처 깨닫기도 전, 심연을 헤짚고 다니는 끝 모를 순간과 정체를 거듭하면서 나의 작업은 짧지 않은 시간을 행보 해왔다.

 

나의 의식과 현란한 현시대에 비하면 케케묵은 붓질만이 나를 완성시키기에 알맞다는 생각은 ‘오로지 나일 수 있는’ 가장 근접한 방식이라 여겨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현 시간 속의 난 ‘오로지 난만이 할 수 있는’ 또는 개인적 표현에 대한 열망의 방법적 모색으로 그간의 작업들을 변화 시키려 노력해왔으며 이제는 조금씩 ‘나’ 또는 ‘타인’이 갖는 일인이 갖는 익명의 성찰들이 지루한 내면의 넘어서는 나의 의식과 사유만이 나를 존재를 입증시켜주는 것이 아님을 근재(根材)로 하는 이야기로써의 접근도 조심스럽게 내비치려 한다.

                                          작가의 노트 중에서

 

 

 

 

박 진홍은 오랫동안 얼굴만을 그리고 있다. 자화상이기도 하지만 익명의 얼굴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기 내면으로부터 끄집어낸 얼굴이다.

 

그렇다면 그는 결국 자기감정을 그리는 것이다. 자기 마음에 드는 형상과 색체, 질감으로 이루어진 어떤 얼굴이다.

 

사실 모든 화가는 자신만의 에고를 그러내는 것이다. 그도 그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양식 말이다.

 

이것은 얼굴을 그린 것인가, 아니면 지운 것인가, 구분이 어렵다. 그리면서 동시에 지워나간 듯하다. 그리기와 지우기를 반복해서 남은 상처 같은 흔적들만이 엉켜있다.

 

‘얼굴’을 온전히 재현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단지 눈에 들어와 박힌 누군가의 얼굴, 거울에 비친 얼굴의 외형을 따라 그리면 그것이 얼굴일까?

 

인간의 얼굴은 난해하다. 그것은 단일한 얼굴이 아니다. 복수의 얼굴이고 가변적이며 지워져만 가는 희박한 얼굴이다.

 

 

 박 진홍의   Self-Portrait . 2010 Oil on canvas

 

 

 

어느 분의 평인지는 알 수는 없다. 나는 작가의 노트와 위의 평을 보면서 작가가 자화상을 그리며 했을 고뇌를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작가의 마음에 내재된 작가의 정신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고백이다. 그러나 저 자화상을 보면서 나는 생각해본다.

 

 

만약에 내가 자화상을 그린다면 어떠한 모습의 나를 그려야 할까? 그러한 생각을 하다. 문뜩,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나일까? 아니면 육의 모습이 나일까?

 

과연, 그대는 누구인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본다.

 

 

 

28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