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한통의 문자로 위안을 삼아본다.

心田農夫 2012. 8. 13. 12:25

 

집으로 가는 길

 

                   이 해 인

 

누구나 가는 길

함께 가면 가깝고

혼자 가면

더욱 먼 길

 

가족들이 모여서

불을 밝히고

기다리는 집

 

나에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가족이었지요

 

가족이 너무 많아

때로는 쓸쓸하였지요

불빛도 잘 보이지 않았지요

 

그래도

집으로 가는 길은 늘 행복하다고

집 없어서 집이 많은 나는

오늘도 웃으며 말을 하네요

 

 

 

 

막내이면서 홀로되신 아버지와 근 15년을 한 집에서 살았다. 시어머니도 힘들다고 하는데 홀로된 시아버지를 두 어린 딸을 기르면서 거기다 직장생활까지 하느라고 아내는 늘 피곤했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떠나신지 언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중년의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는데도, 한 동안 힘이 들었었다. 퇴근하여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언제나 “이제 오냐”반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안보이고 방문을 열어보아도 아버지는 안 계시고 설렁한 냉기만 돌아 나왔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지, 아내는 아버지가 떠나시고 근 한 달이 넘게 아버지의 물건을 치우지 않았었다. 아니 치우면서 한꺼번에 치운 것이 아니라 전혀 표가 나지 않게 하나하나 치웠던 것을 내가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가시고 한 한 달쯤이었을까? 침대가 없어져 설렁해진 방을 보고야 그제야 아버지의 물건들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늘 퇴근하면 아버지가 안 보여 방문을 열어본다는 것을 아는 아내가 그나마 아버지의 채취가 남아 있는 것들을 보고 위로를 삼으라고 생각을 했던지, 매일 매일 아주 조금씩, 조금씩 표가 안 나게 아버지의 물건들을 정리 했던 것이었다.

 

옛말에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 난다”라 했던가? 언제나 아버지 앞에 서시고 아내와 두 딸이 옆에 서서 나를 반기고는 했는데, 단지 아버지의 모습이 안보이고 변함없이 아내와 두 딸이 나를 반기는데도, 허전하고 쓸쓸함이 한동안 나를 지배했었다.

 

모처럼 펴들었던 이해인의 시집 「작은 기쁨」에서 전에 읽었던 “집으로 가는 길”이란 시를 보자니, 서울의 두 딸이 생각이 난다. 이제 성인인 두 딸이지만 퇴근을 하여 집에 들어설 때, 반기어 주던 어머니가 안 계시니, 설렁한 집에 들어서자면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할까 생각을 하니 가슴이 메어진다.

 

같은 서울에 있다면 자주 들려다 보고 함께 하여주면서 작은 위로라도 줄 수 있으련만, 마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 사무실 창 너머로 주룩주룩 내리는 빗방울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어 보다 한통의 위로의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작은 위안을 삼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