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친구가 그리운 주말이다.

心田農夫 2013. 1. 19. 18:16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벗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문을 읽는 것

이것이야 말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어째서 이런 지극한 즐거움이 드문 것인가.

이러한 즐거움은 일생에 단지 몇 번 찾아올 뿐이다.

                     이 덕무의 『책에 미친 바보』중에서

 

영웅호걸도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고 했나? 이 덕무의 “마음에 맞는 시절”이라, 마음에 맞는 시절이란 어떠한 시절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가만 생각을 해본다. 요순시절의 태평시대를 이름일까?

 

일제 항거해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며 자신의 안위를 헌신짝 버리듯 한 분들은 그 시절을 잘못 만난 분들일 것이고 나라와 민족을 팔아서 친일을 해 배를 불린 인간들은 시절을 잘 만난 인간들인가?

 

어디 일제시대 뿐이겠는가? 지금도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야 한다는 친미주위 자들이나 한자가 없이는 한글은 글일 수 없다는 사대주의 망상에 사로잡힌 자들은 시대를 잘 만나 자들이 아닐까? 그런 자들이 엘리트들이라 불리고 국민 위에서 군림하는 위정자들아 아니겠는가.

 

그러나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가정을 돌보지 않고 한 목숨 초개같이 내놓았던 많은 민주열사들을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우한 분들이리라 그렇게 민주주의 일구어 냈건만 아직도 서민들은 서러운 시절을 살고 있다.

 

요즈음 서민들은 밤새 안녕이라 했던가? 평생을 몸 바쳐 다니던 회사에서 명예롭게 퇴직하라며 하루아침에 책상을 빼버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사회 분위기는 어순선하기만 하다.

 

시대가 그래서인가? 친구들이라고 좋은 일에는 친구고 어렵고 힘들 때는 친구라고 하던 얼굴들을 볼 수 없는 것이 요즈음 인심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런 말이 있것인가 보다.

 

酒食兄弟는 千個有로되 急難之朋은 一個無니라.

“주식형제는 천개유로되 급난지붕은 일개무니라

 

술 마시고 밥 먹을 때는

형 아우 하던 친구가 천명이더니,

다급하고 어려울 때는 도와 줄 친구 하나 없네.]

 

마음에 맞는 벗이라 생각을 했더니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아닌 사기꾼으로 변하는 것이 이 시대이다. 아는 얼굴이야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과연 그 중에 내 미음 알아주는 사람 몇이나 될까? 그래 한평생에 진정한 친구 하나 사귀기 어렵다 하는 것이리라.

 

君子之交는 淡如水하고 小人之交는 甘若醴니라.

군자지교는 담여수하고 소인지교는 감약례니라

 

군자의 사귐은 담박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담콤하기가 단술과 같다.

                                 - 공자 -

 

그래서 공자님도 위와 같은 말씀을 하셨나 보다. 세상에 친구라 불리는 많은 이들, 그러나 그런 친구를 만나 가슴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요 세상이다.

 

마음에 맞는 벗을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주고받고 마음에 맞는 시문을 읽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는 조선의 선비 이덕무선생의 말씀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덕무 선생이 말하는 벗,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자붕자원방래 불역락호?)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공자님이 말하는 벗. 그런 벗이 찾아온다면 나 역시 즐거울 텐데 생각되는 주말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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