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보이시나요? 통한의 피눈물이.

心田農夫 2013. 1. 28. 12:23

 

 

한 친구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다 듣고는 헤어져 새로운 벗을 만나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듣노라니 그 친구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대통령이 철학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별 수 없이 한동안은 국민이 철학을 하는 수밖에 없다.

                                                 - 우석훈 -

 

이 이야기를 듣노라니 플라톤의 『국가론』이 생각이 난다. 플라톤의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훌륭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훌륭한 통치자가 나와야 한다. 훌륭한 통치자란 누구인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즉 철학자다. 그러니까 훌륭한 국가를 만들려면 철학자가 통치하거나, 통치하는 자가 지혜를 사랑해야 한다.

                                             플라톤의 『국가론』중에서

 

“대통령이 철학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별 수 없이 한동안은 국민이 철학을 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이야기 하는 우석훈은 플라톤이 말하는 철학자가 통치를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리라. 왜냐하면 그의 앞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다음 정권, 다음의 세계를 어떻게 만드는 게 좋을지 그 방안을 내놓는 게 지금 급한 일이 아니다. 그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논의 과정을 거친 것인지, 그게 더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게 철학의 힘이고 수다의 힘이다.

                                                     - 우석훈 -

 

그의 이야기 속에 “많은 사람의 참여하는 논의 과정” “ 그게 철학의 힘이고 수다의 힘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요즘 말하는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 졌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국민의 뜻이 반영된 정치이여야 한다는 것이리라.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에 있는 것처럼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r perish from the earth. 국민의, 국민에 위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라는 뜻은 국민위에 굴림 하기 위해 통치지가 있는 것이 아니고 국민을 위해서 통치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국민이 있기에 통치자가 있는 것이지 통치자가 있기에 국민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옛날 공자께서도 “民無信不立. 민무신불립”이라 했다. 백성들의 신뢰가 없다면 국가는 존립이 불가능하다.” 또 공자는 정치에서는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첫째, 足食은 먹는 것을 말함이니 경제를 이름이요. 둘째, 足兵은 군대를 말함이니, 국방력을 이름이요. 셋째, 民信之은 백성들의 신뢰를 말함이다.

 

이런 공자의 말에 그의 제자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묻는다. 부득이 그 세 중에서 하나를 빼면 어느 것을 빼야 하겠냐고, 공자는 첫째는 足兵이라 이야기한다. 부득불 또 하나를 뺀다면 하고 다시 자공이 묻자, 足食이라고 한다. 즉 제일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신뢰(民信之)”라고 하며 공자는 말한다.“民無信不立. 민무신불립이라, 백성들의 신뢰가 없다면 국가는 존립이 불가능하다.”라고. 우리의 위정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귀하고 귀한 몸이라 그랬는지, 고소영 강부자 내각을 만들어 같이 놀자 하더니, 한술 더 떠서 천하고 천한 백성, 힘없는 천한 놈들이니 죽어도 좋다는 것인지, 부자는 감세를 해주고 툭하면 이런저런 이유 들어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줄줄이 인상하여 세수를 확보하느라 혈안이 되었지.

 

뿐이랴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동서도 아니 남북을 관통하는 한반도 운하를 하겠다하다가 그것이 안 되니 4대강공사라 이름만 바꾸어 강행하고 제주도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경마을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밀어붙인 것을 보면. 국민을 무시하고 국민을 천시하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소통의 정책에 권력의 정치를 하여 왔던 것이 아니었나.

 

4대강 공사가 잘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 제주도의 강동마을에 해군기지가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읍 단위에 터 잡은 무지한 촌부로서는 알 수 없다마는. 정말 필요한 국책사업이요, 국방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하는 것이리라.

 

국익, 국익 하는데 누구를 위한 국익인가? 흐르고 흐르는 세월의 강위에 회상의 배 띠워 노 저어 거슬러 올라 가보자. 청계천 복원(?)공사라 했던가? 복원의 뜻이나 알고 있는지 몰라, 그것은 복원이 아니라 개발이 아니었던가?

 

그 개발을 복원이란 이름으로 바꾼 것까지야 그렇다 치고 그 위에서 포장마차, 헌책방, 길거리 만물 박물관이라고 할 노점의 벼룩시장, 그 상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던 서민들이었는데,

 

마치 백인들이 인디언들의 땅을 자신의 땅인 양 빼앗아 놓고는 선심 쓰듯 인디언 들을 보호구혁이라는 울타리에 가두어 놓듯, 청계 복개천 위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을 굴비 역듯 역어 강제적으로 한 구역에 몰아놓고는 할일 다했다고 했지, 그곳에서 생활이 막막했던 몇몇 상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반납하는 일도 있었었다.

 

복원이 아닌 개발된 청계천, 그 시멘트로 만들어진 공간으로 흐르는 물은 자연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순환시켜야 한다는 것, 그 순환비용으로 서울시민들이 낸 세금에서 30억의 비용을 쉼 없이 써야 한다는 것이다.

 

청계천을 보는 사람들은 생각할까? 그들의 눈에 보일까? 흐르는 그 물속에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의 통한의 피눈물이 흐른다는 것을, 늘 서민들의 피를 흘리게 했던 개발, 그 개발에 앞서 그들은 늘 국익을 위해서라 했다. 국익이라면, 그 국익은 누굴 위한 국익이란 말인가?

 

새로운 만난 벗『경제학의 배신 』 그 벗을 추천하는 우석훈의 한마디 “대통령이 철학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별 수 없이 한동안은 국민이 철학을 하는 수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 답하듯 이야기 하면서 기원전 살았던 고전의 벗,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통치는 통치의 대상에 이익을 주는 것이오. 그러니까 통치자로서의 강자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기보다는 통치 받고 있는 약자의 이익을 도모한다고 봐야하오. 그러므로 참된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언제나 대상의 이익(국민의 이익)을 돌보기 마련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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