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정말, 정말로. 당신의 뜻은 무엇인가요?

心田農夫 2013. 2. 14. 14:04

 

일을 하던 중에 갑자기 한동안 뜸했던 지인이 생각이 나, 전화를 걸었더니, 벨이 한참을 울려도 전화를 받지를 않는다. 그만 끊으려고 하는 데, 수화기 저편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힘없이 들린다.

 

“어디 아파요? 목소리에 힘이 없네.”

“전화를 안 받으려다 오랜만이라서 받았어요.”한다.

“무슨 일 있어요?”

 

머뭇거리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무슨 안 좋은 일?”

“우리 딸이 하늘나라에 갔어요.”

“아니 그 선교 나갔던 딸 말입니까?”

“예, 저는 하늘나라 가서 좋겠지만--------”

 

아!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직 새파란 청춘인데, 이제 대학공부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젊은이인데, 결혼도 안하고 선교를 하면서 살겠다고 했던 딸이었는데,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마음을 어이 내가 알 수 있으랴. 무슨 말로 위로를 한들 위로가 되겠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단체에서 하는 외국선교에 대한 교육을 받고 2년의 기간을 정하고 떠나던 딸이었는데, 그것도 한창 전쟁 중인 나라를 선택해서, 그렇게도 말리던 부모님의 말을 뒤로 한 채 “하나님이 지켜주시니 걱정 마세요.”한마디 남기고 떠났던 딸이었다.

 

전화를 끊고는 생각을 해본다. 왜? 착한 사람들만을, 왜? 당신의 뜻을 따라당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왜? 그렇게도 먼저 불러 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정말, 정말로 당신의 뜻은 무엇입니까?

 

40이란 나이에 사랑하는 두 어린 딸과 가족의 곁을 떠나 찾았던 외국에서 쓸쓸히 돌아가신 형님을 보내면서 28년 전에 왜? 하는 물음을 했었고, 3년 전 한권의 책을 읽으며 다시 왜? 라는 물음을 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다시 그분에게 묻습니다. 왜냐고?

 

 

 

 

 

 

수현 형제를 환송하며 

 

                   김신곤(고대의대 교수)

 

하나님

오, 하나님

어찌하여 그리하셨습니까?

 

이천년 전 나사렛에서 난 청년 예수가

33세의 나이로 무고하게 죽어갈 때도

당신은 그걸 막지 않으셨지요.

그래서입니까?

예수의 흔적을 안고 살겠다던 수현 형제를

그 예수와 똑같이 33세에

이렇게 죽도록 허락하신 겁니까?

 

그래서 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3년 동안의 공생애가

그 어떤 인간의 평생의 삶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만큼

많은 사랑과 섬김을 보여 주었던 것처럼

예수의 흔적. 수현 형제의 짧은 삶을 통해

그토록 많은 사랑을 나누게 하신 겁니까?

 

그래서 입니까?

인간의 고통과 고난의 역사에

친히 고통 받음으로 응답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예수의 흔적, 수현 형제가

그토록 사랑했던 환자의 고통과 아픔을

자신의 육체로 철저히 경험하도록 하신 겁니까?

 

그래서 입니까?

사망의 권세를 넘어 부활하여

오늘 우리와 함께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예수의 흔적, 수현 형제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잊히지 않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흔적이 되도록 하신 겁니까?

 

그래서 입니까?

그래서 부르신 겁니까?

아아, 우리네 이 작은 머리론

당시의 섭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슬퍼하고 그래서 안타깝고

그래서 비통해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만 눈물 흘리렵니다.

아니 박수로 환송하렵니다.

하나님을 삶의 비전으로 삼고

예수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아로 새기며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진리의 구도자로

사랑의 전파자로

백년을 살아도 의미 없게 살 수 있는 인생을

짧은 만큼 더욱 가치 있게 잘 살아온

그리고 이제 영원한 세계로 초청받은

아름다운 청년, 수현 형제를

살아남은 자들이 박수로 환송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수현 형제는

이제 우리 곁을 잠시 떠났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밝은 얼굴로 다시 반갑게 만납시다.

사랑한다. 수현아!

                                   『그 청년 바보의사』중에서

               

 

 

 

 

젊은 목사부인인 교육학과 후배가 삼 년 전 어느 날 사무실에 찾아와서 “선배님, 이 책 한 번 보세요.”하고 전해준 책이 『그 청년 바보의사』다. 그 책을 읽으며, 그때에도, 28년 전에 했던 그 물음을, 삼 년 전에 다시 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다시 해 봅니다.

 

왜? 당신은 당신의 뜻에 따라 그렇게도 열심히 당신의 사랑을 전하던 앞길이 창창한 젊은 의사를 그렇게 빨리 불러 가야 했나요? 그 물음은 나만의 물음 아니었습니다.

 

 

 

 

 

 

그는 동작동 국립현충원 충혼당에 안치되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어야 하는 맨 아래 줄. 살아서 겸손했던 그 청년은 육신의 마지막 남은 증거초자 그 낮은 자리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젊고 유능하고 신실하며 사랑이 넘치던, 이 청년의 죽음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도 이해 할 수도 없습니다.

                                    『그 청년 바보의사』중에서

 

 

 

 

 

 

순박하기 그지 없는 어리디 어린 처녀가 당신만을 위해 당신의 말씀을 전하며 살겠다고,  연약한고 연약한 처녀의 몸으로 전쟁 중인 나라도 마다하지 않고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말씀을 전하던 그 딸 아이를 그렇게 빨리 당신 곁으로 부르셨던 그 이유를 정말, 정말로 알 수가 없기에 또 한 번 다시 그 물음을 당신께 해 봅니다. 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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