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잊지 않고 촌부를 생각하는 시인

心田農夫 2013. 2. 15. 17:02

 

 

새해 들어 무척이나 바쁘신 모양이다. 하기는 지난해 들리셨을 때에 말씀하시기를 내년에는 너무 바쁠 것 같다고 말씀을 하긴 하셨는데, 한국문인협회 청송지부 회장이 되셨고, 고향의 부동중학교 총동창회장직을 맡으셨고, 좋은 문학 편집위원에 이런저런 중책에 선임이 되어서 시간 내기가 쉽지가 않으신 모양이다.

 

그리 바쁘신 데도 문자를 보내어 안부를 물어주시고 어제는 안부를 물으시며 주소를 적어 보내달라는 문자를 보내 주어 주소를 적은 답 문자를 보냈는데, 조금 전에 집배원 아저씨가 사각의 흰 봉투를 주시고 간다. 받아보니 윤시인의 제5시집 『고향의 섶』이었다.

 

 

 

                                                                    <송림 윤 명학시인의 제5시집 앞 표지>

 

 

 

윤시인은 그렇게 바쁘신 와중에도 이 촌부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시고 시집이 나오자 손수봉투에 넣어 우체국을 통하여 부처주시니 이 얼마나 고마운 마음인가.

 

송림 윤 명학시인의 제5시집은 ‘작가의 말’을 시작으로 1부에서 6부로 나누어져 있다. ‘고향의 섶’이란 제목처럼 고향에 대한 시가 많이 담겨 있다.

 

윤시인의 시들은 고향을 테마로 한수 한수의 시들이 고향의 자연을 주제로 하고 있어 시인의 시를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어머니의 품같이 포근한 고향에 안겨있는 자신을 본다.

 

윤시인의 시들은 나처럼 고향 잃고 타향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잊혀가는 고향을 찾아 마음에 심어주고 있다. 객지에서의 삭막해져 가는 마음을 이전 고향의 순수한 마음을 되돌려 준다.

 

 

 

                                                   <시 소나무 꽃의 시비와 함께 한 윤 명학 시인, 제5시집 뒤 표지>

 

 

 

고향의 섶

               

                      윤 명 학

 

 

아버지 논 갈고 밭갈이 하시다

새참 먹으러 집에 오시면

어머니 동구 밖 어귀에 있는

구판장에 막걸리 심부름을 보낸다

 

일곱 살 먹은 꼬맹이

양은 주전자 움켜잡고

까닥 까닥 막걸리 집으로 향 한다

 

시금털털한 냄새나는

주전자에 입대고 쭈욱 한 모금

기분 좋아 한 모금하다 보니

얼레, 가벼워진 양은 주전자

 

섶 다라 건너오다 서랑들보 밑

샘물로 가득 채워 집에 오다보면

어머니가 저만큼 마중 나오신다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면서

연신 시원하다 하더니

오늘 막걸리는 어찌 이리 싱겁누 하신다

 

식전에 지게에 바소쿠리 받쳐

거름 몇 짐 지고 아침 먹고 학교 가던 시절

목마르고 갈증 나 부엌에 오면

찬장 위 노오란 주전자에 막걸리

양은그릇에 반 사발 부어 마시고

항아리 물로 채워놓고 거름지고 밭으로 가던 일

 

진학반과 취업반으로 분류하여

지구력과 더위와 싸우다

학교 담장 월담하여 맥주병에 든 냉막걸리

한 병 하고 교실에 들어오면

흑판에 반성문 써 교무실에 오라는 글귀가

예비고사 합격통지서인 듯 보이던 시절

 

배고픔을 도배하던 시절

외로울 때 친구로 삶고

즐거울 때 벗을 삼아

반평생을 삶의 동반자로서

서로 진한 맛을 음미하며

오늘도 변함없이 함께하고 있다

 

 

 

 

 

 

윤시인의 ‘고향의 섶’을 읽고 있노라니 나는 어느 사이 빡빡머리에 교모 쓰고 교복 입은 학생이 되어있다. 책을 좋아하는 촌부라 간간히 시집도 구입해 보고 있지만, 시들을 보고 있노라면

 

미사어구의 나열로 깊은 뜻이 숨겨 있는 듯,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는 듯한, 시들을 대할 때가 있는 데, 도무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는데, 윤시인의 시는 너무도 친근감이 들어 마치 나의 이야기인양 하여 추억의 고향을 산책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본다.

 

 

 

 

 

 

고향산장

  

                 윤 명 학

  

언제나 고향은 분양이 된다

 

짙푸른 산과 들

산 꿩과 산 노루

남몰래 숨어 핀

못 다한 사랑과

검정 고무신 추억을

서비스로 내 놓는다

 

분양손님 많은 날에

석벽에 어우러진 단풍과 산머루와

시린 삶 가득한

산채 비빔밥을

별미로 내놓는다

 

홍조 띤 석양이

살평상에 걸터앉으며

등짐해온 시린 삶

잔으로 비우고 채우니

텃새들 입 벌렸다 닫혔다 한다

 

촘촘한 밤하늘

솔 향과 바람을 불러들여

묵은 세월과 찌든 삶

고향산장에 훌훌 터니

고향은 언제나 삶의 주치의 인 것 같다

 

 

 

 

 

 

이제 나의 고향에서는 어릴 적에 고개만 들으면 볼 수 있던 밤하늘의 강, 은하수의 흐름도, 동무와 같이 저것은 네 별 저건 내 별 하던 그 많던 별들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온 동네는 서구의 한 도시를 옮겨 놓은 듯 변하였고, 한 밤에도 문명의 이기인 전구들은 대낮과 다름이 없이 빛을 발하여 고즈넉한 밤의 정취를 멀리 멀리 추방하고 말았다.

 

 

 

 

 

 

과메기

 

                      윤 명 학

 

해변에

나뭇가지에 두 눈 낀 저 고기

부엌마루

*살창에 낀 저 고기

 

바람 부는 날에도

흰 눈이 풀풀 친 날에도

나뭇가지 살창에 끼이고

덕대에 배 갈린 채로 고드름으로 매달려

바다 내음

솔 향 내음 맡으며

도톰하게 익어 가는 그놈들

 

방바닥에 신문지 깔아놓고

잘 익은 그놈 손질하여

생김위에 물미역 넣고

마늘 파 초장 꾹 찍어

소주 한 잔 바다 내음 한 입

소주 두 잔 솔 향 내음 두 입 나누다보면

 

모래알처럼 모여드는 술잔들이

들썩들썩 춤을 추고

겨울추위

일상권태 날려 보내는

과메기는 나의 주치의

 

*살창: 마루, 문틀에 살대를 나란히 세워낸 창

 

 

 

 

 

 

과메기는 말린 청어인 ‘관목청어(貫目靑魚)’에서 유래한 말이다. 꼬챙이 같은 것으로 청어의 눈을 뚫어 말렸다는 뜻이다. 영일만에서는 ‘목’이란 말을 흔히 ‘메기’ 또는 ‘미기’로 불렀다. 이 때문에 ‘관목’은 ‘관메기’로 불리다가 오랜 세월 지나면서 ‘관’의 ‘ㄴ’ 받침이 탈락되고 ‘과메기’가 되었다.

 

요즈음에 청어가 안 잡혀 대신 공치로 과메기를 한다. 전에는 영일만 일대에서만 주로 먹었는데, 이제 과메기는 포항의 명물이 되었다. 언제고 윤시인이 들리면 시인의 “과매기”란 시를 읊조리며 과메기 한 접시 놓고 소주 한잔해야 겠다. 윤 선생님, 언제 시간 내어 우리 과메기 놓고 소주 한잔 하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