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생뚱맞은 생각이 났습니다.

心田農夫 2013. 3. 27. 18:50

 

점심을 먹으며 갑자기 두 여인이 보고 싶어집니다. 아니, 보고 싶다는 말은 예전에 보았던 사람에게 하는 표현이겠지요.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두 여인을 단 한 번도 만나 적이 없으니, 한 번 만나보고 싶어진다는 표현이 옳은 표현이라 하겠지요.

 

그런데 두 여인이라고 했는데, 한 분은 중년이시니 여인이라는 표현을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다른 한 분은 십대, 아니면 이십대? 그 나이를 짐작을 할 수 없으니, 여인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

 

한분은 중년의 수필가요. 한분은 시인의 따님으로 그 시인의 시 주인공입니다. 전혀 관계가 없는 두 사람인데, 왜 점심을 먹으며 두 사람 생각이 떠올랐고 또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자신이 생각해도 그 생각이 참으로 생뚱맞습니다.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靑原 강 전 영

 

심장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가슴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서러운 마음 속삭이듯 부는 바람에도

자장가로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서나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싫어요

어디서나 흔히 불러주는 사람은 싫어요

 

일생에 마지막이라도 좋으니

눈감고도 해주는 음식에 여울지는 목소리

사랑하는 딸아! 하고 불러주는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딸 기침소리에도 엄마가 더 많이 아프지

우리 딸 모델보다 더 예쁜 옷을 입히고 싶은데

 

마주보며 이야기할 수는 없어도

어두운 방 안 가득 채운 눈물 불빛이 창가에 흐르면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을 예쁘다고 하는데

엄마의 손을 놓은 지 숯덩이가 되어버린 세월

 

사막에 떨어져도 살 수가 있으니 걱정 말라는 딸

방문 틈 사이로 하얀 눈이 내리면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위의 시는 靑原 강전영시인의 제 6 시집 18쪽에 있는 시입니다. 점심을 먹기 전 집배원 아저씨가 사각의 봉투를 건네고 가셨는데, 뜯어보니 靑原 강전영시인의 제 6 시집이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봉투에서 꺼내든 시집에서는 강시인의 따스한 온기가 손으로 전해지고 시집을 펼치자 푸푸한 인쇄잉크 냄새가 솔솔 피어오릅니다. 한수 한수 읽어 내려가다. 시집의 끝부분에 있는 발문에 보자니, “그가 그의 딸에게 쓴 반성문 같은 시 한편”이라고 적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발문을 보기 전에는 위 시에 담겨있는 깊은 의미를 미처 알지를 못하였습니다. 발문을 보고 나 다시 찬찬히 시를 음미하노라니. 딸을 둘이나 둔, 딸 바보 아빠로서 시인의 마음에 동화되고 시가 담고 있는 그 깊은 속내에 살포시 젖어들며 눈가에 방울방울 이슬이 맺힙니다.

 

 

 

 

 

 

어머니!

당신은 천 번을 불러도 모자라는 이름입니다.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워도 풀리진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어머니!

해마다 오월이 오면 작은 가슴이 더욱 저리어 옵니다.

하늘도 서러워 눈물 한 줌 뿌리던 날.

 

그 많은 질고를 가슴에 묻고

외롭고 쓸쓸한 길을 조용히 마감하셨던 당신!

 

남기고 간 자리가 너무 커

아직도 일구지 못한 채 녹음 가득한 하늘만 바라봅니다.

물안개 걷히면 당신의 채취가 금세 묻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이명화의『사랑에도 항체가 있다』중에서

 

위의 글은 이명화 수필집『사랑에도 항체가 있다』142쪽에 있는 ‘어머니’란 수필의 일부분입니다. 이명화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당신은 정녕 작은 구도자였습니다.

고향 잃은 사람들의 요람이었습니다.

망망한 바다 위에 등대지기였습니다.

 

   ----------- 중략 ---------

 

당신은 어쩌면 무위의 삶을 사셨습니다.

나는 당신의 모습에서 평화를 배웠고,

당신의 가슴에서 사랑을 키워왔으며,

당신의 삶 속에서 인내를 배웠습니다.

 

들에 핀 풀 한 포기에도 소홀함이 없으셨던 당신!

처마 밑에 떨어진 낙수 한 방울초차도 아끼셨던 당신!

마당을 쓸고 난 후 모아진 흙 한 줌도 버리지 않으시던 당신!

무엇보다도 자연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셨던

참 당신의 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명화의『사랑에도 항체가 있다』중에서

 

 

이명화 작가는 “참 당신의 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제야가 언제일까요? 아마도 다음에 이어지는 글을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의 글 “참 당신의 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라는 글 뒤를 이어 “내 나이 마흔세 살이 되어서야 철이 들었나 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전영 시인의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를 읽고 있노라니, 언젠가 읽었던 이명화 작가의 수필집에 있던 ‘어머니’란 글이 뇌리에 살포시 되살아나며, 두 여인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뚱맞은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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