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깊어가는 가을이 가져다 준 행복한 하루

心田農夫 2013. 11. 21. 17:58

 

 

 

                                                                              <도동서원 전경>

 

                                                                            <사액 현판>

 

 

옳고 그름, 행복과 불행, 사랑과 미움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름이 있어 옳음이 가치 있고 불행이 있어 행복이 소중하고 미움이 있어 사랑이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내가 있는 것은 네가 있기 때문이다. 네가 없다면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대립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제는 편향성이다. 하나의 가치에만 매몰되어 그 뒷면의 다른 하나를 보지 못한다.

             황광우『철학하라』중에서

 

 

 

     

강당 안쪽에 달린 현판>

 

 

혼자서는 어디 가기를 선뜻하지 못한다. 이유는 길치라서 가고자 하는 곳을 잘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내가 장사익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대구에 사는 지인이 장사익의 공연이 대구에서 있다고 오라는 소식을 전해주었지만 망설이다 결국은 가지 못했다. 이렇게 알지 못하는 곳을 찾아가는 것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이라할까? 이런 것이 나에게 있다.

 

얼마 전에 퇴근하여 들어가니 신라문화원에서 보내온 우편물이 책상에 있어서 뜯어보니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제 기원 잠정목록 등재 서원 탐방”이라는 제목에 한국의 대표 서원 9곳이 2012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 된데 이어, 2014년1월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최종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탐방 일정이 나와 있었다.

 

 

 

                                                                  <도동서원의 정문격인 수월루>

 

 

그 일정을 보니 11월 9일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주위에 같이 갈 사람을 알아보았으나 별 반응이 없어 그냥 넘기고 말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11월 16일에 다시 일정이 있어 망설이다 금요일 오후에 신라문화원에 전화를 걸어 신청을 했다.

 

16일, 토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하여 출발지인 경주 서천둔치로 출발하였다. 출발 시간이 8시인데, 3분전에 도착하여 간신히 버스에 올라 서원문화 탐방을 할 수 있었다.

 

 

 

                                  사원 마당에서 찍은 모습    <수종 : 은행나무, 수령 : 400년,  수고 : 25m,  수폭 : 879cm>

 

 

첫 탐방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도동서원(道東書院)이었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자리한 서원, 그 앞에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하였다.

 

 

 

사원 안에서 찍은 모습   <수종 : 은행나무,  수령 : 400년,  수고 : 25m,  수폭 : 879cm>

 

 

도동서원에는 원래 조선오현(朝鮮五賢)중 한분이신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으로 1568년 유림에서 현풍현 비슬산 기슭에 사우(祠宇)를 지어 향사를 지내오다가 1573년 쌍계서원으로 사액되었으나 1597년 왜란으로 전소 되었단다.

 

그 후 1604년 지금의 자리에 사우를 재건하고 보로동서원이라 불리다가 1610년에 도동서원으로 사액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흥선대원군의 1871년에 전국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주요 서원중에 하나라는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앞뒤로 서원을 돌아보았다.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강당인 중정당>

 

 

서원 입구에 서있는 멋진 자태의 은행나무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웅장한 그 모습을 지키고 있음에 당당함을 느끼게 하였고 그 자태는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넓은 강당 앞에서 가만히 눈을 감으니 그 시절 선비들의 모여앉아 모습이 보이는 듯하고 조근조근 토론하는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단 그 토론이 본질과 원리와 원칙을 강조하는 주리론(主理論)과 현상과 운동과 현실을 강조하는 주기론(主氣論)으로 갈라지고 나아가서 사단칠정 논쟁으로 이어지는, 더 나아가 사색당파의 불씨가 되었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타자를 승인할 때, 즉 인간도 지구의 일부이며 나 아닌 인간 역시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때, 즉 안과 밖의 구분이나, 중심과 주변의 구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화를 이를 때 그제야 비로소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요.

     김경윤 『처음 만나는 우리 인문학』중에서

 

 

 

                                                                    <죄측의 환주문과 우측의 수월루>

 

 

강당에서 옛 선인들을 만나고 수월루(水月樓)을 돌아보고 맨 뒷면에 자리한 사당에 올라 돌아보고 우리나라 최초로 보물(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었다는 토담, 자연석을 정렬시킨 지대석 위에 자연막돌을 쌓고 암키와를 5단으로 줄 바르게 놓아 그 사이에 진흙으로 쌓아 올리고 수막새를 엇갈리게 끼어 넣었었다는 담장,

 

이런 암키와 수막세의 사용은 음양의 좌화를 통해 생명력을 불어 넣어 장식효과를 살린 것으로 평가되어 보물로 지장되었다는 토담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으로 도동서원의 탐방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다음 목적인 함평의 남계서원을 향하였다.

 

 

 

 

 

 

가는 길에 개평전통한옥마을의 들려 우리의 한옥의 고즈넉한 멋에 취하여보고 정일품 명가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였고 잠심식사후 있었던 음악회는 경남과 호남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이루어 졌다.

 

 

 

 

 

 

나는 이곳에 머물고 가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집을 지었다.

정일품 명가 터는 명당 중에 명당이라고 한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좋을 날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 정일품 명가 회장 정도상-

 

 

 

                                                      <한훤당 김굉필 선생, 한강 정구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

 

               

에델바이스, 만남 등등 우리의 고유 악기 대금을 통해 나는 감미로운 선율과 남도의 창, 흥부가의 구수한 판소리는 서원탐방의 백미가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혼자라는 용기(?)가 가져다준 서원탐방은 나에게 크나큰 행복을 안겨주었다. 깊어가는 가을이 가져다준 행복한 하루였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사당으로 통하는 내삼문>

 

                                                                 <환주문 위 모습이 마치 상투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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