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몸은 한국산, 정신은 중국산

心田農夫 2014. 10. 3. 19:28

 

 

 

지난 구월의 첫날, 지인이 찾아와 “내일 향교에서 제례행사가 있는데, 관심이 있으면 와서 보겠는가?”묻는다. 그리고 지인은 자신인 이번에 처음으로 제관이 되었는데, 자료를 하려면 사진을 찍을 텐데, 자신의 사진을 나중에 달라는 것이었다. 그 분은 언제인가 모임자리에서 내가 우리의 좋은 풍습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이야기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단다.

 

 

 

 

워낙 제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무슨 제례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향교에서 지내는 제례라 하니 제례에 진수(眞髓)를 보게 되겠다는 생각에 내일 가서 보겠다, 이야기하고 하고 내말을 흘려듣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신경을 써주심에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인간은 주관적인 동물이라 하였던가? 향교에서 지내는 제례이니 그 제례에 모셔진 신위(神位)는 당연히 우리의 선조(先朝)이려니 생각을 했다. 그런데 도착하여 대성전을 들러보니 좌우에 공자의 영정이 있고 영정 중앙에 공자의 위폐가 있었다.

 

 

 

 

그리고 공자의 위패 밑의 좌우에는 안자(顔子), 자사(子思)의 위패가 있고 맞은편에는 증자(曾子), 맹자(孟子)의 위패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안자, 자사 뒤편의 벽 쪽에는 여러 위패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맞은편 증자, 맹자의 위패 뒤 역시 여러 위패들이 한 줄로 자리하고 이었다.

 

 

 

 

특이 한 것은 제물인 돼지머리를 비롯하여 제물로 제기에 담긴 고기들이 전부 생고기였다는 것, 그래서인지 어느 제물에서는 생고기가 냉동되어 있다가 제기로 옮겨 담겨 있다 보니 제물이 해동되면서 제기에는 붉은 피가 흥건히 제물과 힘께 있어 왠지 선뜩한 느낌도 들었다.

 

 

 

 

제례가 끝나자 바로 서둘러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그 제례를 석전대제(釋奠大祭)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석전은 생폐(牲幣)와 합악(合樂)과 헌수(獻酬)가 있는 성대한 제전(祭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향교마다 조금은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것은 어느 향교에서나 문묘(文廟)에 공자와 함께 배사한 네 성인. 곧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와 더불어 십철(十哲, 공자(孔子)의 제자 중 특히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열 사람)모신다.

 

 

 

 

그런데 각향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은 송조2현(宋朝二賢)을 모시는 곳, 송조4현(宋朝四賢), 또는 송조6현(宋朝六賢)을 모시는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동방18현(東方十八賢)이라 하여 문묘에서 배향하는 한국의 유학자들 즉 대성전 좌우 벽 쪽에 사성(四聖)의 위폐 뒤편에 줄지어 자리한 조그마한 위폐가 동방18현의 위패였던 것이다.

 

 

 

 

진행과정을 보니 두 분의 사회자(제례에서는 집사라 하더이다) 한분은 한문으로 된 식순(제례에서는 홀기라 하더이다)의 진행을 이야기 하면 다른 한 분이 우리말로 다시 진행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셨다. 가만히 보니 식순진행을 한문으로 읽으면(‘홀기’를 읽는다고 하더군) 제관, 알자 등 여러 사람들이 알아듣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 다른 사회자(집사)가 다시 우리말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말로 이야기를 해주어도 알자도, 제관도 제관위패 앞에서 절을 몇 번 하는지 모르고, 술을 어떻게 올리는지도 모르고 술도 종류가 있어 4성에게 18현에 올리는 것이 각각 다른데, 번번이 실수를 한다.

 

 

 

 

 

찬인(贊引), 알자(謁者) 제관인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분헌관이 있어 그 제례를 봉행하는 것이 각각 달랐는데, 참석한 제관들이 어디에 자신이 가서 절을 몇 번 하고 어느 술을 올리는지를 몰랐다. 연로하여 구부정히 허리가 굽으신 두 어르신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잘못된 점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진행을 하였다.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이런 문구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석전대제에는 중국이나 일본에도 남아 있지 않는 고래(古來)의 악기와 제기를 보유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고전음악인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과 고무(古舞)인 팔일무(八佾舞), 제관(祭官)이 입는 전통적이고

 

권위 있는 의상과 고전적 의식절차 등이 화려하고 장중하여 예술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커서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 인터넷 자료 인용 -

 

 

 

 

오늘이 4346주년 개천절이다. ‘개천’즉‘하늘이 열린다.’는 뜻이고 그 하늘의 주인인 천제 환인의 뜻에 의해 그의 아들 환웅이 하늘을 열고 내려와 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인간 공동체인 신시를 건설한 날이다. 그리고 환웅의 아들인 단군이 조선을 건국하므로 우리의 민족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개천절을 그냥 단 하루 형식적인 경축행사를 하고 지난다. 그러면서 단군의 이야기는 신화이기에 그것은 거짓이고 개천절에 대하여 별스럽게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휴일이어서 좋고 개천절은 휴일이지, 하는 정도이다.

 

 

 

 

그런 사람들이 그리스신화, 로마신화는 자녀들에게 책을 사주고 꼭 읽으라고 호들갑을 떨다. 우리조상에 대한 신화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믿을 수 없다하면서, 왜 그리스, 로마신화는 그렇게도 알아야 하는지?

 

 

 

 

이처럼 석전대제 또한 우리의 조상도 아닌 중국의 선조들을, 그것도 중국에서 조차 사라졌다는 석전대제를 성균관을 비롯하여 전국의 향교에서는 2월과 8월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내가 느끼기에) 성대하게 지내야 하는 것인지 적이 의구심이 든다.

 

 

 

 

그러한 사대주의 사상이 깊게 물들다 보니 우리의 선조들은 무시하면서 중국에 대하여서는 예나 지금이나 상전으로 생각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석전대제를 보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지난 교황의 방문을 보면서 불교의 교황(?)이라 할 수도 있는 텐진 갸초, 달라이라마 본인도 한국의 방문을 원하였고 불교신자는 물론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그의 사상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한국 방문을 추진 할 때마다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빌미로 텐진 갸초, 달라이라마의 방문을 불허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이라 한 때 유행(?)했던 원정출산, 산모들이 미국에 가서 아이를 출산하면 미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하여 돈 많은 부자 임산부들이 줄줄이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을 함으로 원정출산이란 단어가 생겼다지?

 

 

 

 

일반인뿐이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대통령 후보의 며느리도 원정출산을 했다하지. 몸은 한국산이면서 정신은 일본산이고, 중국산이고, 미국산이고 싶은 우리의 많은 사람들, 개천절은 오직 하루 쉬는 국경일이요, 휴일뿐인 것일까?

 

 

 

                     

                      단상 : 그대 누구신가

                               碧 石

 

몸은 분명 한국인인데

미국인이라 하더이다

어리둥절 물었더니

my mamma 원장출산 덕이라네요

 

말을 분명 한국어인데

미국어처럼 말 하더이다

끼우뚱 물었더니

no, 한국 I am USA 사람입니다

 

 

 

 

개천절인 오늘 법정스님의 유언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 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가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법정의 『무소유』<미리 쓰는 유서>중에서

 

 

 

 

어찌 보면 일본도 중국도, 지금은 사라진 석전대체를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하여 명맥을 유지하는 것도 문화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것을 지키면서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우리의 소중한 유형무형의 자산을 빼앗아가는 중국이란 나라.

 

 

 

 

어느 날, 중국과 일본이 하는 행동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여기게 되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가만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생각보다 낮아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만하던 중,

우연히 인터넷 뉴스에서 아리랑이 중국무형문화재가 되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왜 나는 분노만 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걸까’

               --------------- 중략 -------------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렇게 생각해낸 것이 영상제작이었지요. 잘하지는 못하지만, 저에게는 영상재작과 편집능력이 있었던 것죠.

    이정현의 『공주를 산다』,<109명의 아리랑> 박경민 학생의 글 중에서

 

 

                                                        <위 글의 주인공 박경민학생이다. 혹시 초상권에 문제가

                                                           있으면 연락주시면 삭제 하겠습니다.>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는 일본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광개토왕비문을 훼손, 고쳐가면서 발해를, 고구려를 자신들의 소수부족이었다고 주장하는 중국.

 

 

 

 

그런 중국이란 나라 것을 우리가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까지 그렇게 지킬 필요가 있는지? 개천절을 맞이하여 조용히 생각을 해보면서 이 글을 쓴다. 이렇게 장시간 자료를 찾아 참고해 가면서 글을 쓰는 이유는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그래 몸도, 마음도, 정신도, 한국인이기에 우리의 유형무형문화를 지키고 싶고 진정 우리의 것의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알리기 싶은 심정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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