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하여 생각하기

이 시대에 세종대왕 같은 지도자를 만날 수는 없는 것인가.

心田農夫 2014. 10. 9. 16:45

 

때는 바야흐로 ‘쉬운 글’의 시대다. 실용주의와 기능주의 교차점일까.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려운 한자를 가르치자는, 어린 발목에 족쇄를 채우자는 잠꼬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 법령문들, 문장법을 도외시한, 잡초의 들판인 교과서 문장들‥‥‥. 하루빨리 문장의 교통정리를 해야 겠다.

                                              장하늘 지음 『글쓰기 표현사전』중에서

 

 

세종 35년인 1443년 12월에 한글로 불리는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다. 오늘은 그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568돌 한글날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엄청난 반대가 있었는가보다. 그렇게 중요하고 큰일을 실록에는 단 몇 줄, “이달에 주상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셨다.” 라고 짧게 기록한 것을 보면 한글창제를 은밀히 추진했던가보다.

 

물론 잘 알려진 것처럼 최말리라는 사람이 “야비하고 상스러운 무익한 글자”라 하며 가치를 낮게 평가하며 지금 이 언문은 새롭고 기이한 하나의 기예에 지나지 않아 학문을 손상시키고 정치에 이로움이 없으니 거듭 생각해도 옳지 않다.”라는 상소문을 올려 반대를 했다는 것을 미루어 보면 그 당시의 기득권층의 반대가 얼마나 심했던가, 짐작이 간다.

 

그 당시나 근 600년이란 세월이 지난 2014년인 현제에도 한글에 대하여 시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화를 내세우면서 마치 영어가 아니면 세계화를 못하는 것처럼, 영어를 못하면 세계인이 못되고 낙오자가 되는 것처럼 그리고 한문을 한글과 병행해서 쓰지 않으면 한글만으로는 의사전달이 안된다며 초등학교부터 한자교육을 해야 한다는 사대주의자들의 과거지향적인 공자의 찢어진 도포자락에 매달리는 이시대의 유학자들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어 소송에 휘말리기라도 하면(민사소송을 2년간 해보았다.) 법원은 마치 대한민국 안에 있는 다른 나라인 것만 같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이 87%라고 하는 것 같은데, 대학을 졸업한 사람 은 물론 석ㆍ박사라도 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장 하늘 선생님의 말씀처럼 법에 관한 문서들은 대다수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지 알기가 쉽지가 않다.

 

이처럼 그 당시에도 순진한 백성들은 글을 몰라 답답해했고 글을 몰라 기득권 세력자들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온 백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글 언문을, 백성을 위해 한글 창제를 하려고 하였건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와 집현전 학자들은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반대를 했다.

 

 

첫째, 우리 조선은 계속 중국을 섬겨오고 중화의 제도를 지켜

왔는데, 이렇게 새로운 문자를 만드니 놀랍고 중국이 아 사실을 알게 되면 비난 받을 수 있다.

 

둘째, 몽골이나 서하, 여진, 일본은 저 나름의 문자가 있지만 이는 오랑캐의 일이다. 새로운 문자를 만다는 것은 중국을 버리고 오랑캐가 되는 것이다.

 

셋째, 이미 설총의 이두를 사용해서 문자를 알게 된 사람이 많다 새로운 문자는 여기에 혼란을 불러올 것이며, 또 언문은 너무 쉽기 때문에 성현의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학문에는 방해되고 정치에는 유익하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도 좋릉 것이 없다.

 

넷째, 왕은 언문으로 옥송 같은 것을 쓰면 어리석은 백성들이 라도 모두 알아들어 억울함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고움으로 억지로 고백하는 것이 오리려 많으니 옥졸관리들의 문제이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언문으로 옥사를 공평하게 한다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다섯째, 언어를 만드는 일은 풍속을 바꾸는 일이므로 신하들과 함께 의논하고 중의를 모으며 몇 번이나 검토하고 중국에

알려야 부끄러움이 없고 시행할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가르치고 책을 만들고 인쇄하니 언문은 그리 급한 일도 아닌데, 어째서 이것만은 보급에 서둘러 왕의 건강마저도 망치고 있다.

 

여섯째, 여러 취미생활은 사람의 기운을 갉아먹는데, 세자는 아직 유학을 열심히 배워야 한다. 하지만 언문은 재주의 한가지뿐이고 정치에 유익한 것은 조금도 없는데 이에 정신을 소모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한 지음 『나는 조선이다』중에서

 

 

이러한 기득권자들인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학자들에게

“지금의 언문은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들은 설총은 옳다고 하면서 임금이 하는 일은 그르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또 너희가 운서(韻書)를 아는가? 사성칠서(四聲七音)에 자모가 몇 개나 있는가?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누가 바로잡겠는가?”라며 단호한 의지를 표하신 세종대왕

 

이 시대에 세종대왕 같은 지도자를 만날 수는 없는 것인가. 국민을 생각하며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며 국민만을 위한 지도자를 만날 수는 없는 것일까? 만날 수 있다. 우리들의 수준을 높이면 만날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 국민들을 속이고 속이는 지도자를 묵인하는 한 언제나 반복되는 거짓말에 대응할 방법은 없지만.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프랑스 정치가 - 토크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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