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오월의 첫날 행복의 인사를 전합니다.

心田農夫 2015. 5. 1. 18:00

 

 

 

우리는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나와 가족, 친척, 친구, 동료, 이웃….

이 관계들이 행복해야 삶이 행복한 것입니다.

혼자 행복한 것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스승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배움이요

깨달았다고 해도,

관계 속에 불편함이 남아 있다면

아직 그 깨달음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중에서

 

 

 

 

오월의 첫 날입니다.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도 하지만 또한 가정에 달이라고도 하지요. 근로자의 날, 어린이 날, 어버이 날, 그리고 18일은 성년의 날, 21일은 부부의 날 등, 그 기념일 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는 날들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날들로 그 관계를 돈독히 하라고 기념일을 만들 것이라 느끼게 됩니다.

 

위의 혜민 스님의 “우리의 가장 큰 스승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배움이요. 깨달았다고 해도, 관계 속에 불편함이 남아 있다면 아직 그 깨달음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라는 글을 읽으면서 문뜩 공자의 말씀이 또한 생각이 나는군요.

 

 

 

 

공자의 『논어』에 보면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간다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서 좋은 점은 가리어 본받고,

그들의 좋지 않은 점으로 나 자신을 바로 잡는 것이다 ”

 

 

 

 

공자님도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만남에서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 점을 보면 그 나쁜 점을 나의 거울로 삼아 나쁜 길로 가지 말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또 공자님은 “바른 길로 나아가는 자는 받아들이고 바른 길에서 물러나는 자는 받아들이지 않는 법이다.”

 

배우려고 찾아오는 사람을 두고 이른 말이지만 이 말씀 또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말씀으로 옳은 사람과는 관계를 맺지만 옳지 못한 사람과의 관계는 맺지 말라는 말씀이겠지요.

 

인생길 가면서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우리들은 단 하루도 그 만남이란 관계를 지속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쉽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을 인연이라 말을 하지요. 이 인연이라는 말을 불가에서는 어떠한 결과로 이끄는 직접적인 원인인‘인(因)’에 의하여 간접적인 원인인 ‘연(緣)’으로 이어진다고 말을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어떠한 만남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방에 오셔서 부족한 글을 읽고 가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모자라는 글에 나름의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을 단 한 번도 우연히 제 방에 들렀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불자도 아니면서 다시 불가의 이야기를 한다면 전생에 삼천 번의 만남이 있어야 이승에서 길을 가다가 옷소매를 살며시 스치고 지나간다고 하던데,

 

온라인이란 무한한 공간의 세계에서 아주 작디작은 점처럼 작은 방이 제방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저의 방에 오시는 것이 어찌 우연이라 하겠습니까? 보이지는 않겠지만 인과 연이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처럼 저는 오시는 모든 분들을 소중히 생각을 하면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제 방에 잠시라도 머물다 가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그리고 찾아 주심도 감사한 일인데 나름의 댓글을 남겨 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오월의 첫날을 맞이하여 우선 찾아주심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사드리면서 아울러 오월의 나날들 건강하시고 즐겁고 행복한 오월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오월의 첫날에 심전농부 인사드립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인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연들이 모여서 운명이 되기도 합니다.

         ------------- 중략 ------------

여기 저기 우연의 점들을 찍어 나가다

그것이 연결되어 선이 되고 인연이 됩니다.

그리고 인연이 모여 면(面)이 되고 장(場)이 됩니다.

 

                       신영복의 『담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