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너무도 불편한 자리였습니다.

心田農夫 2016. 2. 3. 12:13



로히르 반 데르 웨이덴 <동정녀 마리아를 그리는 성 루가> 1435~1440년

 

이글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완전치 못한 것이 인간이요, 그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완전하지 못한 한 사람이 한 잘못에 대하여 평한다고 할까? 어떠한 경우라도 평가의 대상이 된 사람이나 그 평을 듣는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너나 잘해.”자신도 올바른 삶을 살지 못하면서 남에 이야기나 하는 몰염치 범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얀  반 에이트 <반 데르 팔레 제단화> 1436년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마태복음 7인용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면 그 후에야 밝히 보고 네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오강남의 도마복음 풀이 또 다른 예수인용



                                                          도미니키노 <성 히에로나무스의 마지막 영성체> 1614년



위의 성경말씀처럼 나의 잘못부터 알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서 나의 시각으로, 나의 판단으로, 남의 잘못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니, 이 글을 쓴다는 것은 어이 보면 스스로를 욕되게 하는 것만 같기도 해서, 이글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전에 다니던 교회에 납품할 것이 있어 갔었습니다. 그냥 물건만 전하고 돌아 올 수도 있었으나 이왕 갔으니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자는 마음에 예배에 참석해 설교 말씀을 듣는 중에 어느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자식에게 부탁의 말을 하셨답니다. 내가 죽으면 내가 앉아서 예배 보던 자리에 네가 앉아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겠느냐?”는 아버지의 임종 전의 말씀에 자식은 네 그러겠습니다.” 약속을 했답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고 나서 교회를 찾아와 목사님에게 아버지가 앉으셨던 자리가 어디인지 물어보고는 아버지가 생전에 앉아 예배를 보던 그 자리에 앉아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얀 모스타르트 양식 <비탄에 빠진 그리스도> 1520년경



그 말씀을 들으니 아버님 생전에 아버님를 모시고 집사람과 함께 교회에 다니던 그 때가 생각이 나고 아버님이 늘 앉으셨던 자리를 저쯤인가 하고 눈으로 찾아보았습니다. 그러자니 아버님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착잡해졌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점심을 먹고 가라는 장로님, 권사님들의 말씀도 있고 후배의 점포를 방문하여야 하는데 찾아가면 분명 후배가 점심을 살 것이라. 그 또한 민폐를 끼치는 것이라는 생각에 교회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후배에게 가려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아벨을 죽이는 카인> 1608~1609년경



나의 맞은편자리에는 올해 71세의 연세로 작년 말에 장로직분에서 은퇴한 분이 앉으시고 내 옆자리에 앉으신 분하고 그 앞에 앉으신 세분이 식사를 하며 말씀을 나누시는데, 동석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세분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용인 즉, 세분이 속한 남선교회의 한분이 갈비뼈가 부러져 입원을 해 계시는데. 한 분이 병문안을 가야 하지 않느냐. 그리고 병문안을 가면서 선교회비에서 일정금액을 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씀에 내 옆에 앉으신 분이 한두 번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아니고 입원할 때마다 어떻게 병문안을 갈 것이며 매번 어찌 돈을 전하겠느냐. 그 친구는 회에서 정해진 금액은 벌써 다 받았어.” 하시더군요.




                                                         앙게랑 샤롱통 <이비뇽의 피에타> 1455년경



병문안 가자고 말하던 그 분이 사람이 어찌 그냥 모르는 채 하냐 음료라도 사가지고 가봐야 할 것 아니냐.”는 말에 내 앞의 장로님 그 친구 회비도 제대로 내지를 않는다.”말을 하니, 병문안 가자던 그분이 월 회비 납부 봉투를 내보이면서 나한데 지난 달 하고 이번 달 회비를 주던데,” 하면 봉투를 내 보여 주었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그분은 병원에 자주 입원했었던 것 같았고, 평소에 사람들에게 미움 살 일을 하시는 분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면 드려다 보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일반 계모임도 아니고 한 교회에 다니는 입장인데, 어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전할 금액을 다 전했다 해서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것인지 납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성 베로니카의 거장 <예수의 수건을 들고 있는 성  메로니카> 1420년경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위기 19인용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느니

                                                                                                     『마태복음 22인용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로마서 13인용





                                                                        폴 고갱 <황색 예수> 1889년



교회도 세상과 조금도 다름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밥을 먹고 있는데, 앞에 계시던 은퇴 장로님, 병문안 가자는 이야기는 접고 얼마 전에 당신이 의료원에 다녀왔던 이야기를 하십니다. 어디가 아팠던지 의료원에 갔는데 젊은 의사 놈이 자는 빼고 이야기를 하는데 기분이 나빴다는 말씀과 자신은 아파 힘든데, 의사는 괜찮다고 해서

 

같은 새끼, 네가 의사야, 〇〇, 나는 아파 죽겠는데, 괜찮다고, 〇〇새끼 〇도 모르는 게 의사라고,”하며 한바탕했다면서 내가 여기니까 이정도 말하는 거지 거기서는 더 심하게 했다.”라는 이야기는 나를 경악케 하였습니다. 마치 십대의 철없는 불량배 아이들이 욕을 섞어 자신의 무용담이야기 하듯 말씀을 하십니다.


 



                                                      안드레아  델 베리키오 <그리스도의 세레> 1470~1475년경



10년 전에 그분이 장로로 선출되고 임직식에서 안수를 받고 장로로 취임하신 지 얼마 안 되어 주일예배를 보고 나오는데, 교회 앞마당에 널려있는 쓰레기를 맨손으로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은 것을 보고는 정말 장로다운분이시다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언제 어디서나 장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분을 장로의 표본처럼 이야기를 많이 했었습니다.

 

대다수의 분들이 안수집사 시절에는 열심히 봉사를 해도 장로가 되면 장로가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집사 때처럼 봉사를 하는 것을 보기 힘듭니다. 헌데 그분은 장로가 되시고 맨손으로 쓰레기를 줍는 것을 보고 처중인지소오(處衆人之所惡)라 뭇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라는 노자의 도덕경에 있는 한 구절을 떠올리며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분이었는데, 식당에는 제법 많은 교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심한 욕을 거침없이 하시는 그 분을 보면서 그 자리에 앉자 밥을 먹으려니 심히 불편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밥그릇 국그릇 들고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밥을 먹는 내내 고역도 그런 고역이 없었습니다. 그 분은 그 오랜 세월 무엇 때문에 교회를 다녔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그리스도 십자가 처형> 1515년경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 중략 ----------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은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테복음 15인용

 



                                                    로히르 반 테르 웨이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435년경




28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