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만나 탁주 한 사발 나누고 싶은 사람

心田農夫 2017. 7. 14. 17:20

 

개답게 걸레답게

 

                                     최 범 용

 

한 때는 걸레라 하기도 했지

더럽다 어쩌다 핀잔주지만

 

걸레 없이 무엇을 깨끗이 하리

한 때는 개답게 산다고 했지

 

개만도 못한 놈

소리보단 낫었기 때문

 

걸레처럼 고래고래 동네 한바퀴

채워지지 않는 바람엔 늘찬 번뇌를

 

시주 않고 물벼락 주던 어느 공양주

이빨 악물고 세상을 욕하듯

눈깔을 홉뜨고 코방귀 뀌었네

 

서리서리 에워 돌아 절로 가는 깃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산사 굴뚝엔

세월을 재촉하는 지친 낙엽들

 

걸레처럼 개처럼 스러져 가는 세월

새해 되면 세상도 맑아지려나

차 향기에 섞이는 더러운 걸러들

 




 

비람에 날려 강물 위에 떨어진 하나의 낙엽처럼 세월의 강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낙엽 같은 법부의 인생길. 걷다걷다 다리 아프면 주막에 들려서 탁주 한 사발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나의 인생길에서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겠지만, 간간히 문뜩 생각이 떠오르면서 마주앉자 탁주 한 사발 나누고 싶은 분이다.

 

2003년에 잠시 만났으니 세월의 강은 벌써 그 분을 만난 지 강산이 변한다는 10년하고도 4년이란 세월이 어느 사이 훌쩍 흘렸지만, 잠시 잠깐 뵌 분이건만 어느 순간 불쑥불쑥 생각이 난다. 2003331일 삼월의 마지막 날에 손님으로 점포에 들렸던 고객이시다.

 


 


그분은 명함을 내미는 대신에 자신의 시집으로 대신한다. 그러니 그분은 시인이시다. 그러나 시인이라 하면 시를 창작하며 먹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함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시인이 아니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재직(지금쯤 정년퇴임하시지 않았는지?)하는 지질학박사님이시다. 지금은 그분처럼 직업과 관련 없이 시를 쓰는 분들이 많기는 한 세상이 되었지만.

  



 

단상 : 인연 삼배

 

                      碧 石

 

이승의 가볍게

스치는 인연도

전생에 삼천 번

만남이 쌓인 공덕이거늘

 

상거래의 만남이라지만

마주앉아 나누었던 대화야

스치는 인연에 비할 바가 있으랴

 

만남의 인연 꽃피우기 위해

어이 술 한 잔 아니 나눌 수 있으랴

 

첫 잔은

만남의 인연을 살리기 위해 마시고

두 째 잔은

인연을 인연으로 맺기 위해 마시고

세 째 잔은

맺은 인연을 꽃피우기 위해 마시우리

 




 

삼월의 마지막 날에 잠시 들렸던 그분이 점포에서 일을 다보고 가셨는데. 한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점포에 들어와서는 자신은 대전에서 출장을 왔는데, 오늘은 이곳에서 묵으신다면서, “명함 대신입니다.”라면 하눌타리의 외이란 제목의 시집 한권을 건네주셨다.

 

그것이 그분과 첫 만남이요 마지막 만남의 이었다. 바쁘던 시간이 지나고 한가한 시간되어 주신 시집의 시들을 음미하노라니, 비슷한 연배여서 그런지 아니면 미사여구로 지어진 시가 아니어서 그런지 그분의 시들 하나하나에 공감을 하며 볼 수 있었다.

  


 



우리말은 어디에

 

                               소벌 가리소모로

 

술 한 쇠옹 받아다 벗님을 맞아

머귀나무 사이로 지는 달빛그림자 때를 해며

가을밤 달래는 귀뚜라미 울음을 노래 삼아

뜨락 바자니며 지새 볼거나

 

먼 할아버지 오라땅 찾으라고 사람 보냈건만

서흐레 잊고 맞서 달려드니 나라가 바뀌었네

뙤놈이면 어떻고 오랑캔들 어떠리

얼근해서 짖는 놈이 개인 마당에

 

조선일보 독자투고에서 한글논쟁이 한창이던 즈음 세상이 달랐었다면 썼을지도 모를 우리말과 한자어 투성이인 말로 대비시켜 지었다.

 

國語何處

 

                         蘇伐 蓋蘇文

 

藥酒 甁 購入해다 親舊들 불러

梧桐나무사리로 지는 月影으로 時刻推定하며

長長秋夜 귀뚜라미 울음소리 曲調삼아

庭園이나 散步하며 지새볼거나

 

俎上遼東回復하라 軍隊를 보냈건만

階級無視하고 抗命 回軍하니 易姓革命이라

中國人이면 어떻고 野蠻人인들 어떠리

해서 高喊치는 가 개인 世上

 


 

 

그분이 오셨던 2003년에는 점포만을 보고는 책을 좋아하는 지 알 수 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사각의 점포안 두 벽면에 책장이 있고 책들이 도란도란 줄지어 서있다. 이런 환경이면 시집을 건네 줄만도 하지만, 그런데도 처음 보는 장사치에게 선뜻 명함 대신한다며 시집을 주었다. 초록은 동색이라 하였던가.

 

책머리에서 그분은 나이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달라진 내 모습 돌이켜 보는 맛도 남다르다. ----- 혼자 애를 삭이지 못해 엉킨 실밥을 풀어내듯 썼던 것들도 꽤 된다.”더불어 혹시 이 시집을 펼칠 분들에게 당부하기는 한 번에 하나, 둘만 소리 내서 읽으시길 권한다,”라고 적고 있다. 그분의 당부이기도 하고 팍팍한 세상사에 탁주 생각이 나면 책장에서 내어 펼쳐든다. 인연이 된다면 만나 탁주한잔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