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한마디 말에 자신의 인격이 드러남을 알아야지

心田農夫 2018. 2. 8. 18:14

상처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 활동을 하다보면, 내가 상대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분명히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길 거예요. 그리고 우리편에게서 받은 상처가 훨씬 더 아플 수도 있어요.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중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살아갈 수기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가정에서는 가족관계, 학교에서는 교우와의 관계, 직장에서는 동료 간의 관계를 맺으며 우리는 살아간다. 이러한 관계를 우리는 우애(友愛)란 말로 표현을 한다. 우애란 가까움을 말하는 것이고 그 가까움은 정()을 나누는 사이인 것이다. 정이란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다.

 

 

믿고 친밀감을 가졌던 사람,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정을 나누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상처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김승섭의 “‘우리편에게서 받은 상처가 훨씬 더 아플 수도 있어요.” 말처럼 그 상처가 얼마나 아팠으면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그것도 가족을 둔 52세의 중년의 교사가 투신자살을 선택하였을까? 보도된 자료의 유서를 보면 교장교감 선생님, 교직원, 학생,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B고사 괴롭힘 때문에 죽는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단다.



 

 


그 학교에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였다지,

 

평소 선생님께서는 같은 과목선생님으로부터 인격모독과 욕설 등을 들으셨고 학교 내의 따돌림으로 인해 우울증까지 겪었다. 오래는 몇 십 년 짧게는 몇 년 동안 함께 일 해온 선생님께서 이런 일을 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피하기만 바쁜 선생님들 밑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게 정말 부끄럽다,”고 하였다지.

                                                                                         인터넷 신문에서 인용함


 

  

 

교사들이라면 제자들의 언행에 대한 언어지도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자신의 인격을 나타낸다는 것을 그 선배교사는 몰랐을까? 고인과 선배교사의 대화를 보면 그 선배교사 마치 조폭이 하는 말 같다. “근데 왜 , 거려요. 저도 나이가 52살인데.” 야 임마 52살이나 처먹었으면 XX, 똑바로 해라.” 스치듯 지나가는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스마트폰의 문자를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고인의 부인이 보냈던 듯하다. 내용은 당신이 참아 가족들을 생각해서가족을 생각해서 참으라고 했음에도 선배교사의 말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치욕적이었으면, 가르치는 선생님이 극한 결정을 했어야만 했는가.

 

계속 터져 나오는 우리사회의 비리들을 보면 다 갑질, 즉 힘에 의한 범죄들이다. 성폭력, 성추행, 여중생들의 집단 폭력, 취업비리, 힘 있는 자들이 힘이 약한 자들에게 악행을 저질러놓고는 그 악행이 세상에 밝혀지는 것을 막으려고 가진 수단을 다 동원해서 권력과 힘을 이용해 저지를 하려고 한다. 그러다 밝혀지면 발뺌하기에 급급하다. “그런 사실이 없다.” “오래돼서 생각이 안 난다.”이번 일도 학교 측에서는 단순 자살로 처리하자고 했다지? 그런 추한 모습을 볼 때마다. 피해자는 있는데 언제나 가해자의 존재는 없다.




 

파상(破傷)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찌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 구약 성경 레이기 2420-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때린 것은 때린 것으로 갚을찌니라.

                                                                    - 구약성경 출애굽기 2124~25절-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우리의 사회. 피해자를 위로하고 보호하기보다는 가해자를 숨겨주고 두둔하는 현상. 그래서 약자는 힘에 의 억눌리고도 그에 대하여 항변을 할 수없는 사회, 용기 내어 항변하면 다시 제 2차 피해를 보는 사회, 우리사회는 언제나 공정하고 공평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될까?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위의 성경말씀대로 못된 짓을 한 그들에게 똑같은 식, 눈은 눈으로 이은 이로 처벌을 해 주면 어떠할까? 똑같이 당한다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왜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않는지 모르겠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면 절대 그런 못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