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슬픈 날의 초상

心田農夫 2022. 2. 4. 11:42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은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 되고 극복되기 위하여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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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나 비극을 인내하고 위로해 주는 기쁨, 작은 기쁨에 대한 확신을 갖는 까닭도 진정한 기쁨은 대부분이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신영복의 엽서중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은 죽고 싶은 정도의 침통한 슬픔이 있어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작은 기쁨이 큰 슬픔을 위로해 준다고 말씀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데, 오나가나 혼자인 나는 그 누구와 관계를 매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혼밥이다, 혼 술이다. 점점 일인가구가 늘어나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추세인 시대에 일부로 따라가는 것은 아닌데, 어찌하다 보니 이제는 혼자서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점점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업종의 작은 점포를 운영하는 나로서는 그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지 못하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겠지만, 고향을 떠나서 객지 생활을 하면서 호구지책(糊口之策) 시작한 장사가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들어서면서 급격히 하락한 매출로 인하여 동종 업종의 운영자들이 점포 문을 하나둘 닫기 시작하여 이제는 나처럼 나이 들어 출근하고 퇴근하는 의미로서의 개념으로 점포를 지키고 있을 따름이다. 점포 폐쇄하기 전까지는 집에서 점포를 오고 가는 반복적인 생활을 할 뿐이다. 매일 출근하여 마냥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일과이고 해가 지면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도 혼자이다 보니 때때로 살아가는데, 회의를 느낄 때가 종종 생긴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이러한 삶이 진정 삶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더니 갑자기 슬픔이 밀려온다.

 

 

 

 

슬픔을 떨치려고 펴들고 읽던 책에서 위와 같은 글을 읽노라니, 고향 생각이 나고 어릴 때 놀던 친구가 그리워진다. 그리운 고향도 개발 때문에 어릴 때 뛰어놀던 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전혀 알아볼 수조차 없이 변해버려서 갈 고향도 없어진 셈이다. 어찌 보면 세월의 흐름으로 보면 이곳이 제2의 고향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진대, 점포를 지키고 앉아 있으며 보낸 세월은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 하나 없이 긴 객지 생활을 해온 셈이다. 오늘은 왠지 알 수 없는 슬픔이 몰려오는 이 아침에 슬픔을 피해 보자 펴들었던 책을 보면서 더욱더 슬픈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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