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슬픝 우리들의 자화상

心田農夫 2006. 5. 4. 16:21

 

 

☆어느 시어머니의 고백☆


얼마전 뉴스를 듣는데
90살 노부부가 치매에 걸려서
동반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들었습니다.

지금 내 나이보다 30여년을 더 사시면서
얼마나 힘들고 고달펐겠는가 싶더군요.

저는 얼마전까지는 그래도
하루하루 사는 기대를 가졌었답니다...

차마 제 주위에 아는 사람들에겐

부끄러워 말할 수 없었던 한 달 여 동안의

내 가슴속 멍을 털어 보고자
이렇게 어렵게 글을 적어 봅니다.

내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고등학교때
남편을 잃고 혼자 몸으로 대학 보내고
집장만해서 장가를 보냈죠.
이만큼이 부모로써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아들놈 장가 보내 놓았으니
효도 한 번 받아보자 싶은 욕심에
아들놈 내외를 끼고 살고 있습니다.

집 장만 따로해 줄 형편이 안되어
내 명의로 있던 집을
아들명의로 바꿔 놓고는 함께 살고 있지요.

남편 먼저 세상 떠난 후 아들 대학까지
공부 가르치느라 공장일이며 때밀이며 파출부며.
안해 본 일이 없이 고생을 해서인지
몸이 성한데가 없어도 어쩐지 아들 내외한테는
쉽게 어디 아프다란 말하기가
왜그렇게 눈치가 보이는지.....

무릎관절이 안좋아서 매번 며느리한테
병원비 타서 병원 다니는 내 신세가
왜 그렇게 한스럽던지.....
참, 모든 시어머니들이 이렇게
며느리랑 함께 살면서 눈치 보면서
알게 모르게 병들고 있을겁니다.

어디 식당에 일이라도 다니고 싶어도
다리가 아파서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아들한테 짐만 된거 같은 생각마져 듭니다.

며느리가 용돈을 처음엔 꼬박 잘 챙겨 주더니
이년전 다리가 아파서 병원을 다니면서부터는
제 병원비 탓인지 용돈도 뜸해지더라구요,

그래도 아따금씩 아들놈이 지 용돈 쪼개서
꼬깃꼬깃주는 그 만원짜리 서너장에
내가 아들놈은 잘 키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래며 살았지요.

그런데 이따금씩 만나는
초등학교 친구들한테 밥한 끼 사주지 못하고
얻어만 먹을게 너무 미안해서
용돈을 조금씩 모았는데

간혹 며느리한테 미안해서
병원비 달라 소리 못할 때마다 그 모아둔 용돈
다 들어쓰고 또 빈털털이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친구들한테 맘먹고
밥한번 사야겠단 생각에
아들놈 퇴근 길목을 지키고 서있다가
"야야, 용돈 좀 다오.
엄마 친구들한테 매번 밥 얻어 먹기 미안해서
조만간 밥 한끼 꼭 좀 사야 안되겠나."
어렵게 말을 꺼냈더니만 아들놈 하는말이
"엄마, 집사람한테 이야기 할께요."
그러곤 들어가지 뭐예요.

내가 괜히 말을 꺼냈는가 싶기도 하고
며느리 눈치 볼 일이 또 까마득 했어요.
그렇게 아들놈한테 용돈 이야길 한지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답이 없길래
직접 며느리한테
"아가야, 내 용돈 쫌만 다오.
친구들한테 하도 밥을 얻어 먹었더니
미안해서 밥 한끼 살라한다." 했더니

며느리 아무 표정도 없이
4만원을 챙겨 들고 와서는 내밀더라구요.
4만원가지고는 15명이나 되는 모임친구들
5000원짜리 국밥 한그릇도 못먹이겠다 싶어서

다음날 또 며느리를 붙들고
용돈좀 다오 했더니 2만원을 챙겨 주었어요.

그렇게 세차례나 용돈 이야길 꺼내서
받은 돈이 채 10만원이 안되었지요.

그래서 어차피 내가 밥사긴 틀렸다 싶어서
괜한짓을 했나 후회도 되고

가만 생각해 보니깐
괜히 돈을 달랬나 싶어지길래
며느리한테 세번에 거쳐 받은
10만원 안되는 돈을 들고 며느리 방으로 가서
화장대 서랍에 돈을 넣어 뒀지요.

그런데 그 서랍속에
며느리 가계부가 있더라구요.

난 그냥 우리 며느리가
알뜰살뜰 가계부도 다쓰는구나 싶은 생각에
가계부를 열어 읽어 나가기 시작을 했는데.
그 순간이 지금까지
평생 후회할 순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글쎄,
 9월14일 왠수 40000원  
9월15일 왠수 20000원
 9월17일 또 왠수 20000원

처음엔 이 글이 뭔가 한참을 들여다 봤는데
날짜며 금액이 내가 며느리한테
용돈을 달래서 받아 간 걸 적어 둔 거였어요.

나는 그 순간 하늘이 노랗고
숨이 탁 막혀서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남편 생각에..

아니, 인생 헛살았구나
싶은 생각에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어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들고 들어갔던 돈을 다시 집어들고 나와서
이걸 아들한테 이야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가 생각을 했는데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이야길 하면
난 다시는 며느리랑 아들 얼굴을 보고
함께 한집에서 살 수가 없을거 같았으니까요.

그런 생각에 더 비참해지더라구요
그렇게 한달 전 내 가슴속에
멍이 들어 한10년은 더 늙은 듯 하네요.

얼마 전 들은 그 90대 노부부의
기사를 듣고 나니깐
그 노부부의 심정이 이해가 가더군요.

아마도 자식들 짐 덜어 주고자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어요.

며느리랑 아들한테 평생의
짐이 된 단 생각이 들때면
가끔 더 추해지기 전에 죽어야 할텐데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도 이제 곧 손자녀석도 태어 날텐데
자꾸 그때 그 며느리의 가계부 한마디 때문에
이렇게 멍들어서 더 늙어가면 안되지 싶은생각에

오늘도 수십번도 더 마음을 달래며 고치며
그 가계부의 왠수란 두글자를 잊어보려 합니다.

차라리 우리 며느리가
이 방송을 들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젠 자식 뒷바라지에 다 늙고
몸 어디 성한데도 없고 일거리도 없이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지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과 인지 모르시죠?

이 세상 부모로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자식한테 받는 소외감은
사는 의미 뿐만 아니라
지금껏 살아 왔던 의미까지도 무의미해진다라고
말입니다.

이제라도 이렇게 방송을 통해서
가슴 아팠던 심정을 털어 놓았느니

며느리 눈치 안보고 곧 태어날
손주녀석만 생각하렵니다.

요즘은 내가 혹시 치매에
걸리지나 않을까 싶은 두려움에 
책도 읽고 인터넷 고스톱도 치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글은 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

자신을 희생하셨던
부모님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
우리님들과 함께 하고저 띄웁니다.

'주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더욱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님들이시길 빕니다..

 

 

 

                                                학급카페에 여성 학우가 올린

                                                                     글을 스크랩 해왔습니다

 

                                                   왠지,

                                 가슴이 찡해 옴을 느끼면서

                                 한줄 한줄 읽어 습니다.

                                 나 역시 팔십 육세의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으면서 어떻게 살아왔나

                                 뒤돌아보게 하는 글 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살면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여려 이야기를 듣고는 합니다.

                                 어떤 이는 막내가

                                 왜, 모시느냐

                                 집사람 고생 시키면서

                                 따지듯 물어 올 때도 있고

                                 어떤 이는 요즈음 세상에

                                 장남도 안 모시려고 하는데

                                 막내가 효자니 모시지

                                 칭찬하듯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냥 웃으며 듣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나니 여러 가지

                                 잘 못했던 일들이

                                 간간히 생각이 나고 해서

                                 아버지에게 잘 해 드리려고 해도

                                 그것이 마음 뿐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한테도

                                  그 때는 잘 해드려야지 했었는데

                                  살아생전에 잘하지 못했던 일들이

                                  문뜩 문뜩 살아가면서

                                  떠오르고는 합니다.

                                  그것은 살아생전에만이 아니고

                                  돌아간 신 지금도 모신 곳이

                                  멀다는 이유 와 바쁘다는 핑계로

                                  일년에 한 번,

                                  아니 어느 해는 그나마 한 번도

                                  찾아보지를 못 합니다

 

 

 

봄이 가고 있는 지금입니다

봄이 지고나면 청년 같은

푸름의 여름이 오겠지요.

여름인가 하면 그 푸름은

어느 사이 누렇게 퇴색된 채

포도 위를 낙엽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부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뒹굴어 다닙니다.

그러고는 내리는 하얀 눈 속으로 덮어져

푸르렀던 날도, 누렇던 날도 있었던 가하면서

보이지 않는 눈 속으로 덮여져 사라집니다.

이것이 나뭇잎의 일생이라고 하겠지요.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자신은 시간을 멈추고 살고 있는 양

착각 아닌 착각 속에 살고들 있는 것은 아닌지

신이 인간에게 가장 공평히 주신 것

그것은 시간입니다

정지할 수없는 시간

 

 

사랑, 

그것을 올바로 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는지

그 며느리도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겠지요.

남편을 사랑한다면

그 남편을 낳아주시고 기르고 가르치고

자신의 남편으로 옆에서 살게 해주신

그분이 왠수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사랑,

우리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며칠 어버이날이 다가오는데

저 자신부터 많은 반성을 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어버이날을 맞이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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