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행억념은(遠行億念恩)
멀리 길을 떠난 자식을 걱정해 주시는 은혜
죽어서 헤어짐도 참아내기 어렵지만
살아서 생이별도 아프고 서러워라.
자식이 집을 떠나 타향에 가게 되면
어미의 모든 마음 그 곳으로 따라 가네
밤낮으로 그 마음은 자식을 생각하여
흐르는 두 눈물이 천 줄기 만 줄기라.
원숭이 달을 보고 새끼 생각 울부짖듯
부모의 자식 걱정 간장이 다 끊기네.
한국의 아들가진 부모님들
대다수 아들이 성장하면
국방의 의무를 하기위해
집을 떠나는 아들하고 생이별을 한다.
훌쩍 커버려 당신 업을 정도의
당당한 자식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신다.
나도 인생의 황금기인 이십대를
맞이하여 긴 기차를 타고
논산 훈련소를 향할 때
어머니는 자식에게 안 보이시려고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셨다.
내가보기에는 그렇게도
강인하셨던 분이었는데
철들어 처음 보는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군복을 갈아입던 날
입고 갔던 옷과 신발을
포장하여 각자 주소를 쓰라고 해서
거두어 집으로 보내더니
받아보시고는 또 한 번 눈물을
한 없이 흘렸다 하신다.
삼형제를 기르신 나의 어머니는
위에 두형님들이 같은 해에 입대를 하여
복무 할 때에는 눈물을 흘리시기는 하셨어도
삼년이란 긴 시간을 걱정을 하시면서도
한 번도 면회를 가시지를 않으셨다
아니 못 가셨다
차멀미가 얼마나 심하신지
차를 타지를 못하셨다
그래서 평소에도 가야 할 곳은 두세 시간을
걸어서 다니면서 생활을 하셨다.
그러니 강원도 최전방과 진해라는
먼 곳은 엄두를 못 내셨던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의 면회도 못 가셨던 어머니가
막내인 내가 얼마나 걱정이 되었으면
하루전날부터 멀미약에 몇 번을 잡수시고는
면회를 오셨다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시고는
그만 잔디밭에 쓰러지셨다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멀미가 심했던지
말 그대로 초죽음이 되시어서 도착하자마자
못난 자식 놈 얼굴 한번보고 쓰다듬으시고는
창백한 얼굴로 쓰러지셨다
벌써 32년 전의 이야기다
그 어머니가 지금은 안 계신다.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데도
조금이라도 늦으면 대문 밖에서 서서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으시며
못난 자식 놈 무슨 일이라도 있나
걱정하시며 기다리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눈을 감으시면서
못난 막내를 걱정걱정 하시면 떠나신 지도
벌써 21년이나 되었다.
그립고 보고 싶고 안기고 싶은 나의 어머니
어머니,
조용히 사죄하는 마음을 가지고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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