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원행억념은(遠行億念恩)

心田農夫 2006. 6. 30. 16:03

 

9098

 

 

 

 

원행억념은(遠行億念恩)


멀리 길을 떠난 자식을 걱정해 주시는 은혜



죽어서 헤어짐도 참아내기 어렵지만

살아서 생이별도 아프고 서러워라.


자식이 집을 떠나 타향에 가게 되면

어미의 모든 마음 그 곳으로 따라 가네


밤낮으로 그 마음은 자식을 생각하여

흐르는 두 눈물이 천 줄기 만 줄기라.


원숭이 달을 보고 새끼 생각 울부짖듯

부모의 자식 걱정 간장이 다 끊기네.






한국의 아들가진 부모님들

대다수 아들이 성장하면

국방의 의무를 하기위해

집을 떠나는 아들하고 생이별을 한다.


훌쩍 커버려 당신 업을 정도의

당당한 자식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신다.


나도 인생의 황금기인 이십대를

맞이하여 긴 기차를 타고

논산 훈련소를 향할 때


어머니는 자식에게 안 보이시려고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셨다.


내가보기에는 그렇게도

강인하셨던 분이었는데

철들어 처음 보는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군복을 갈아입던 날

입고 갔던 옷과 신발을

포장하여 각자 주소를 쓰라고 해서

거두어 집으로 보내더니

받아보시고는 또 한 번 눈물을

한 없이 흘렸다 하신다.


삼형제를 기르신 나의 어머니는

위에 두형님들이 같은 해에 입대를 하여

복무 할 때에는 눈물을 흘리시기는 하셨어도


삼년이란 긴 시간을 걱정을 하시면서도

한 번도 면회를 가시지를 않으셨다


아니 못 가셨다

차멀미가 얼마나 심하신지

차를 타지를 못하셨다


그래서 평소에도 가야 할 곳은 두세 시간을

걸어서 다니면서 생활을 하셨다.


그러니 강원도 최전방과 진해라는

먼 곳은 엄두를 못 내셨던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의 면회도 못 가셨던 어머니가

막내인 내가 얼마나 걱정이 되었으면

하루전날부터 멀미약에 몇 번을 잡수시고는

면회를 오셨다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시고는

그만 잔디밭에 쓰러지셨다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멀미가 심했던지

말 그대로 초죽음이 되시어서 도착하자마자

못난 자식 놈 얼굴 한번보고 쓰다듬으시고는

창백한 얼굴로 쓰러지셨다

벌써 32년 전의 이야기다

그 어머니가 지금은 안 계신다.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데도

조금이라도 늦으면 대문 밖에서 서서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으시며

못난 자식 놈 무슨 일이라도 있나

걱정하시며 기다리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눈을 감으시면서

못난 막내를 걱정걱정 하시면 떠나신 지도

벌써 21년이나 되었다.


그립고 보고 싶고 안기고 싶은 나의 어머니

어머니, 

조용히 사죄하는 마음을 가지고

마음속으로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