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위조악업은(爲助惡業恩)

心田農夫 2006. 7. 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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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악업은(爲助惡業恩)


자식을 위해 험한 일이라도 서슴치 않고 하시는 은혜



어버이 크신 은혜 바다에 비길 건가,

산보다 높사오니 어떻게 갚사오니.


자식의 갖은 고생 대신 받기 소원이요.

자식이 고생하면 부모 마음 더 괴롭네.


아들 딸 길을 떠나 먼 곳에 간다 하면

잘 있는 가 춥잖은가 밤낮으로 걱정이네.


잠깐 동안 지나간 자식들의 괴로움도

어머님의 그 마음은 오래두고 아프셔라.





낳아 주시고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

이제는 사람 구실하겠지 생각 하셨단다.


그런데 결혼을 못하고 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하시며, 

너 하나 결혼 하는 것을 보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만,---

생존에 하시던 나의 어머니 말씀이시다


불효를 저지를 것에 대해 지금도 마음에

한(限)으로 자리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나이 먹었으면 가정을 꾸려야지

무엇이 부족해

결혼을 못하니,

한숨내시면서 말씀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독교 가정이라 교회의 권사님들이

중매라는 것을 참도 많이 해 주셨다.


맞선 자리에 가면 양가 부모님들과

서로 인사를 하고는 어른들이 자리를


떠나면 두 사람 만이 남아서

판에 밖은 듯 똑같은 질문과

그 질문에 답을 주고받다가

헤어진다.


집에 오기가 무섭게 다그치신다.

이번에는 어떠냐고


늘 똑같은 나의 대답이다


“연락 오겠지요,”


아니 이놈아 맘에 들면 남자가 연락을 해야지

여자 측에서 어떻게 연락은 하니

이번에도 맘에 안 드니?

말 좀해라 말 좀 해


그저 그래요


그것이 결국은 어머니 살아 생존에 결혼을 못 했다

아닌 안 해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늘 보아왔던 목회자들이

가족 때문에 제대로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그래 나는 사도 바울처럼

혼자서 목회생활을 하여야지 하는 생각에

맞선을 보고 헤어질 때는 명함 한 장 달랑 내놓고는


제가 마음에 들면 연락 주세요.

하고는 헤어졌었다.


그러니 결혼이 성사가 안 될 수밖에,

때로는 연락이 오기도 했지만

이 핑계 저 핑계로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모면을 하고는 했는데


결국은 그것이 마음에 큰 불효로 자리한 채

아픔이 되어 안고 살아간다.


어머니 떠나시고

떠돌이 되어 방랑생활을 하면서

목회자가 되겠다는 서원도 접었고


어찌하다보니 포항에 머무르게 되었고

이웃의 중매로


때늦은? 

결혼을 해서 두 딸을 두고 있지만

두 딸과 아내는 할머니와 시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항상 예쁜 두 딸을

어머니 생존에 품에 안겨 드리지

못한 한이 가슴에 묻혀 지워지지 않는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오늘

사무치게 어머니가 그립다


이제 오십을 넘긴 나이지만

어머니 하고 부르면서

응석을 부리고 푼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