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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은 재천(人命在天)인 것을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죽음은 둘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죽음은 일종의 소멸이어서 죽은 자는 아무것도 지각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말하듯 죽음은 일종의 변화이고 혼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주(移住)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만약 죽으면 아무 지각도 없이 죽음이 꿈 없는 잠과 같은 것이라면, 죽음은 놀라운 이득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 죽음이 그런 것이라면, 죽음이 이득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그러면 영원(永遠)조차 단 하룻밤보다 더 길어 보이지 않을 테니까. 또한 죽음이 이승에서 저승으로의 이주와 같은 것이라면, 그리고 사람들 말처럼 죽은 사람은 모두 그곳에 있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는가? … 그곳 사람들과 대화하고 함께하..

살아서도 이산 사후에도 이산의 아픔

라는 글을 어버이날이 어제 올렸다. 어버이날을 맞자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 부모님은 이북에서 남쪽으로 피난을 오면서 첫째인 누님을 고향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긴 채 두 형님만 데리고 남하하셨다. 계획은 남쪽에 자리를 잡은 후에 누님을 데리고 올 생각이셨으나 38선이 막히면서 누님과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었다. 혹시나 누군가에 의해 누님이 남하하지 않았을까? 하는 심정으로 KBS 이산가족 찾기에도 나가서 애타는 마음으로 기적을 바라보았지만, 그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남한에서 태어나 이북의 누님은 남한에 두 동생만 있는 줄 아시고 나의 존재를 모르신다. 살아생전에 부모님은 당신들의 죄도 아니건만, 부모님은 늘 누님에게 죄인으로 사셨다. 살아생전 어머님은 “걷는 아이를 데리고 왔으면 되는데..

하늘나라로 선물 보낼 수 없을까?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 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점심을 먹고 잠시 깜박 졸고 있는데, “꽃 배달 왔어요.” 하는 소리에 깼다. 웬 꽃바구니지? “누가 보내지요?”라고 하니 그분이 딸들 이름을 대면서 보냈다고 전한다. 그러고 보니 내일 어버인 날이구나. 멀리 서울에 있으니 직접 전하지 못하고 사람을 시켜 꽃바구니 선물을 보낸 것이다. 보내온 카네이션꽃을 보고 있노라니, 택배기사님 “택배입니다”..

행복의 색

분홍빛 행복 뜻밖에 만남에 커피 한잔 나누는 것이 이리도 행복한 줄 오늘 새삼 알았습니다. 행복은 평범한 삶 속에 있다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체험하기는 처음입니다. 행복은 많은 배움에 있는 것도 아니고 행복은 깊은 신앙에 있는 것도 아니고 행복은 높은 명예에 있는 것도 아니고 행복은 여려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저 평범한 삶 속에서 거짓 없는 진실한 마음과 마음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될 때 분홍빛 행복은 두 마음이 한마음 되면 그 한마음에 스며든다는 걸 오늘에서야 새삼 깨달았습니다.

자가도취에 빠졌네

최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 미국대사관 외교문건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이 2005년 5월 당시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ㆍ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체 이 대통령의 ‘친미ㆍ친일’의 정도가 얼마나 깊었으면 ‘뼛속까지’라고 표현했을까.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뒤이어 터져 나온 외교문건들에 따르면,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어떤 한국 고위관리는 “미국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fighting like hell)고 말하기도 했으며, KBS의 한 기자는 미 대사관으로부터 ”대사관 연락선(Embassy contact) 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수 차레 걸쳐 한국의 정세를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자는..

이해와 오해의 간극(間隙)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걸 보아도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 남이 나를, 또한 내가 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이해하고 싶을 뿐이지.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타인(他人). 오해란 이해의 이전 상태가 아닌가.…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중에서 손님으로 오셨던 한 사찰의 보살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이 절에 다니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까지, 시간 가는지도 줄도 모르고 이야기했다. 자신이 사는 면으로 들어가는 막차 시간이 돼서야 일어서 가셨다. 그 후 두어 달이 지나서 불쑥 점포에 들어와서 손에 들었던 보자기를 풀면..

모순(矛盾)의 진리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 아무것도 갖지 않았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無所有)의 역리(逆理)니까 법정의 『무소유』 중에서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서일까? 청소년기에 궁핍한 생활을 해서일까? 살아오면서 절약, 절제된 생활을 하며 살았고 이제는 그것이 몸을 벴다. 그러다 보니 쓰던 것을 버려야 하는데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언제가 쓸모가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버려도 될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리라. 일 년에 단 한 번도 입지 않는 옷가지들, 간단한 생활 가구들 등등, 법정 스님은 자신을 속세 속으로 이끌게 하였던 글 “무소유”라는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사랑하는 까닭을 말하는 시인

사랑하는 까닭 한 용 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微笑)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健康)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만해는 사랑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까닭”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사랑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하면서 이 시를 음미했다. 만해는 사랑하는 이유에 대하여 다른 이들은 나의 홍안을 사랑하고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고 건강한 나만을 ..

어리석은 질문, 우매한 답

아전인수 신체(身體)는 대인(大人)인데 정신(精神)은 소아(小兒) 수준이네 포청천인 줄 알았더니 이성계를 탐하네 직무의 진퇴(進退)를 후배들에게 물어보고 그러고도 모자랐나 보다 선배들에게 일일이 전화로 물었단다 이리저리 묻지 않아도 지난 세월 살펴보면 알 일을 전임자들 지시에 불복 옷을 벗는 것이 당연지사 관례 자신의 진퇴(進退)를 남에게 묻는 인물을 대인(大人)이라 할 수 있나 소인의 아전인수일 뿐이지 대인(大人)인 줄 알았더니 철들지 않은 소인(小人)이였네 정몽주인 줄 알았더니 정도전이었네 한 매체를 통해서 우연히 접한 소식이다. 윤씨 성을 가진, 자신의 직무 내던졌던 그 사람이 며칠 전(3월 19) 연세대 명예 교수이고 1세대 철학자라 불리는 올해 101세의 노(老) 교수를 찾아가서 “교수님, 제가..

다시 보니 반갑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 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無所有)의 역리(逆理)이니까. 법정『무소유』중에서 ‘무소유’일부 옮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 올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