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살아가는이야기 668

새해 벽두에 웬 넋두리

사람과의 관계에는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해. 그런 마음의 에너지를 나와 맞지 않는 사람에게 쏟아버리면 정작 사랑하는 사람에게 쏟을 에너지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될거야. 지금, 이 순간 소중한 마음의 에너지를 길바닥에 쏟아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아깝잖아. 선미화의 『당신을 응원하는 누군가』 중에서 넋두리 碧石 이른 아침 영일대 갔다 떠오른 태양을 보며 올해는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는 한 해로 삼자 떠오르는 저 태양을 보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지난 한 해는 몸과 마음이 정말 힘들었던 한 해였다 누구 한 사람 의논할 사람도 도움을 부탁해도 내민 손 잡아주는 이 없었다 이곳이 고향이고 고향 친구였다면? 선뜻 손을 잡아주었겠지 고향이 시나브로 그리워진다.

잊을 수 없는 마음

우애 가족 碧石 혈연 중심 사회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그네를 형님, 아주버님, 큰아버지 호칭으로 불러주는 후배 가족이 있다. 잊을 만한 세월 지나 들려도 언제나 반갑게 맞이하며 변환 없이 불러주는 그 호칭 형님, 아주버님, 큰아버지 기나긴 여정 피로에 지친 몸 타향살이 설음에 지친 마음을 살뜰한 대접에 푸근한 인정이 춘삼월 눈 녹아들듯 녹아드네.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보내주는 다이어리 2권, 고향에 있는 후배는 벌써 근 10여 년을 단 한해도 빼놓지 않고 연말에는 전화해서 “형님 다이어리 내년에도 필요하시지요?” 물고는 한다. 12월 초에 전화로 묻기에, “필요는 한데---”말끝을 흐렸더니, “제가 사서 보냈게요,”한다. 내가 “일부로 사서 보낼 것 없어” 하자, “괜찮아요.” 한다. 그러더니 ..

고향 친구, 객지 친구

서울 손님 碧 石 나라 수도 전 지역이 마치 자신의 고향이기라도 한 듯 서울에서 왔다 하면 헤어졌던 십년지기라도 만난 듯 그 반가움은 손님과 장사꾼의 관계를 망각한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기도 하더라만 텃세라는 세금을 아니 내서일까? 도무지 정을 주지 않는 이 땅에서 정 주리며 사노라니 잠시 다녀가는 서울 손님 뒷모습도 그립기만 하더이다. 태어나면서 운명은 정해진다. 정해진 팔자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라는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지나온 삼십여 년의 지난 삶을 돌아보면, 객지 생활과 장사치로 살아갈 팔자였던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피치 못할 상황에 고향을 떠나서 이곳저곳을 떠돌다 대구에서 직장을 잡고 생활하다 스카우트되어 이곳에 왔지만, 회사는 일 년 만에 문을 닫고 오갈..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느낌표로 남았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의 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김초혜 『행복이』중에서 “이순(耳順)과 종심(從心) 사이에서 새로 시작한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것이 만 삼 년이 되어간다. 그 글을 쓰면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중도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젊은 학우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자문자답(自問自答)하면서 출발한 것이 어느새 삼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학사 전 과정을 우여곡절(迂餘曲折) 속에서 어렵게 마치고 수료를 했다. 논문을 쓰려고 하는 그 시점에 논문지도 교수는 사직했고, 혼자서 10여 개월을 논문을 써서 심사 신청을 하려니 논문지도 교수 없이는 신청이 안 된다고 하여 학교에서 지도 교수를 지정해 준 교수가 사직했음에도 새로운 지도 교수를 지정해 주지 않았는데 무슨 말이냐는 항변에 새로 부..

그대는 하얀 백지의 삶을 살아왔나?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비난을 하고 판단을 한다는 것은 한 달 전이나 두 달 전 또는 몇 년 전의 낡은 자로서 현재의 그 사람을 재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의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법정 스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중에서 , 1913.3. 15. 이후. 텔레비전보다는 책을 더 보기는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는 것이 알고 싶어 간간이 텔레비전을 본다. 그런데 이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아 그만두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인데도, 법을 만들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법기관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하는 것을 보면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우상숭배에 빠진 종교인들

오늘은 제74주년 광복절이다. 일본의 경제침략으로 분노한 많은 국민들이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을 하고 있는 요즈음 일부 극우성향의 목사들이 하는 행동은 무척이나 위험천만하다는 생각을 하게한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것일까? 아니면 각자의 마음속에 세상의 욕망을 들어달라는 청탁을 들어주는 나만의 신(神)정도로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중요한 것은 절대자 하나님 지신과 하나 되는 체험을 통해 삶을 완성시키는 것, 그것을 신앙의 궁극 목표로 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절대자에 대한 일이나 생각은 우리를 이런 체험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 때만 그 효용성이 인정된다. 오 강남의 『예수는 없다』 중에서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예배 설교시간에 목사가 설교..